1923년 일본 간토(關東)대학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에 대한 위령 활동에 헌신해온 일본의 승려 세키 고젠(關光禪) 스님이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세.
17일 간토 대학살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온 재일동포 출신 오충공 감독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16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 감독은 지난 11일 고인의 일본 지인뿐 아니라 한국인 지인들도 대거 참석한 가운데 고별식이 열렸다고 전했다.
간토대학살은 1923년 9월 1일 도쿄(東京) 등 간토 지방에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가 퍼지자, 일제 자경단(민간 경찰 조직)과 경찰, 군인이 재일조선인들을 대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독립신문은 대학살로 조선인 6,661명이 희생됐다고 썼다. 대지진으로 격앙된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조선인을 희생시켰다는 게 이 사건에 대한 현재의 대체적인 평가다.
간논사(觀音寺) 주지 스님이었던 고인은 당시 지바(千葉)현 다카스(高津) 지역의 조선인 학살을 알리는 활동에 집중했다. 일본인들은 대지진 후 조선인 3,500명을 지바 나라시노(習志野)의 수용소에 격리해뒀다가 마을마다 조직된 자경단에 살해용으로 ‘배급’했는데 다카스 사건 희생자들도 이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키 스님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이 사건을 한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 심우성 민속연구소 소장 등의 도움을 받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범종과 종루를 설치했다. 아울러 시민단체와 함께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억울하게 살해당한 뒤 매장된 유골을 발굴하기도 했다.
세키 스님의 이 같은 활동은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하된 조선인’ 등에 담겼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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