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남미에서 축구 경기는 흔히 ‘전쟁’에 비유된다. 국가대표팀 간 경기는 물론 클럽 대항전에도 거의 예외 없이 수만 명의 관중이 빼곡히 들어차곤 한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은 대체로 소음수치(데시벨)가 100을 넘는다. 록밴드의 공연을 가까이서 들을 때와 비슷한 수치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 프로축구 선수들이 홈경기에서 응원을 받을 때면 순발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최대 70%까지 증가했다. 일종의 관중효과(audience effect)다.
□ 축구에선 관중들과의 교감이 막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징계일 터. 지난해 여름 러시아월드컵 준우승국인 크로아티아는 석 달 뒤 잉글랜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경기에서 홈팬들의 응원을 받지 못했다. 3년 전 ‘유로 2016’ 예선 당시 홈경기장 잔디에 새겨진 ‘나치 문양’으로 징계를 받은 결과였다. 지난해 11월 남미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2차전을 앞두고 리버 플라테(아르헨티나)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으로부터 홈 두 경기 무관중 개최를 통보받았다. 일부 팬들이 상대팀 선수단 버스를 습격한 뒤 내려진 징계였다.
□ 아시아권에서도 무관중 경기가 종종 있었다. 북한은 2005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란에 0-2로 패한 뒤 관중들이 이란 선수단 차량을 가로막았다가 다음번 일본과의 홈경기 개최권을 박탈당하고 태국에서 무관중 경기를 치렀다. 2017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욱일기를 내건 팬 때문에 일본 클럽팀에 대한 두 경기 무관중 징계가 논의됐다. 국내 K-리그에서는 2012년 서포터즈 폭력 사건으로, 일본 J-리그에서는 2014년 인종차별 현수막으로 각각 무관중 경기가 열렸다.
□ 15일 평양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남북전은 29년 만에 성사된 A매치로 국민적 관심이 높았지만 생중계 불발은 물론, 관중도 없이 치러졌다. 징계에 따른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 북한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무관중 경기였다. UEFA에 따르면 무관중 경기의 65%가 무승부이고 그 중 절반 가량이 0-0이라고 한다. 적막한 운동장에서 선수들끼리만 거친 몸싸움으로 90분을 보낸 이번 남북전도 0-0이었다. 답답한 남북관계가 투영된 듯해 씁쓸하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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