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난민, 반(反)이슬람 정서를 자극하며 등장한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대안당)’은 2013년 창당 때만 해도 주류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소수정당이었다. 그러나 6년이 흐른 지금 대안당은 연방하원과 지방 의회까지 진입한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급성장했다. 난민 유화 정책을 주도하며 유럽의 모범국가를 자처해왔던 독일은 어쩌다 극우 세력에 물들게 됐을까.
사회적 소외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은 ‘불안’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통제 불가능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국민들의 심리상태가 급진화된 생각과 행동으로 표출되고, 이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6년에 출간된 ‘불안사회’는 전 세계적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극단주의를 개인과 사회의 관계, 심리학적으로 들여다 본 책이다. 난민과 외국인 등 유럽이 직면한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타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쏟아내며 극단으로 갈라진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협소한 이념과, 고립된 정체성에 빠진 극단주의자는 정치적 이념과 종교, 인종, 민족 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란터만은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극단주의자들은 불확실한 삶의 조건에서 무너진 ‘자기 가치감’을 되찾고자 ‘자기 급진화(Selbstradikalisierung)’를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이를 급진주의, 광신주의라고도 표현한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의 원인은 공통적이다. 경기 침체와 불평등, 잇따른 테러, 급변하는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은 개인의 ‘노오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정부가 불안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상황도 못 된다. 사회적 연대, 결속은 기대하기 어렵다. 란터만은 이 같은 보호막 없는 인생에서 나를 지켜줄 합리적 수단으로 급진주의와 광신주의에 투신한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자유보다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란터만은 급진주의와 광신주의는 현대인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돼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한다. 협상, 타협은 일체 거부하고, 반대자는 무찌르기 위해 공격한다. 적대와 혐오, 대립 속에서 소속감과 일체감은 더 높아진다. 단순 명료한 목표, 의심할 필요 없는 결속을 통해 이들은 겨우 불안에서 탈출한다. 집단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더욱 인정 받기 위해 상대를 향해 더 과격해진다. 그렇게 도태되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불타오르는 증오는 삶의 지향점이 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촛불 이후 대한민국 광장을 뒤덮고 있는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평생 신봉해온 신념들이 무너질 것 같다는 위기감, 나이 들어 밀려 났다는 박탈감, 숨가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태극기부대는 무너진 자존감과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수단인 셈이다.
란터만은 이 밖에도 운동 중독이나 극단적 채식주의자 등도 불확실성을 타개할 안전지대를 찾는 급진주의, 광신주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편다. 몸의 통제를 통해 통제 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극단주의를 방편 삼아 취한 안정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다. 세상을 우리 대 그들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증오와 대립, 반목을 무한 반복한 채 고립과 파멸을 심화할 뿐이다. 란터만은 시민사회의 연대를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극단주의자들을 무턱대고 비판하기에 앞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먼저 들어보고 소통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증오와 적대는 사실 사회 속에 함께 있고 싶다는 절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불안사회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 지음ㆍ이덕임 옮김
책세상 발행ㆍ224쪽ㆍ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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