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어우동'의 한 장면.

조선 성종 때 희대의 성 추문 스캔들을 일으킨 어우동(於于同)은 기생이 아니라 명망 있는 양반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지승문원사 박윤창의 딸로 왕실 종친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했다. 조선 학자 성현(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齎叢話)’에는 어우동이 어느 날 집에 온 은그릇 장인에게 반해 내실로 끌어들여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에게 걸려 친정으로 쫓겨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자유부인이 된 어우동의 연애 행각은 더 대담해졌고, 왕실 종친과도 바람을 피웠다. 장내에 소문이 퍼지자 급기야 당시 임금이었던 성종까지 나서게 됐다. 3년 동안 신분을 따지지 않고 수십 명의 남자들과 간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성종은 유교 국가의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480년 어우동을 극형에 처했다.

‘풍기를 문란케 한 희대의 방탕한 여성’으로 보이는 어우동에 대해 역사학자 권경률은 다른 평가를 한다. 아내였던 폐비 윤씨의 권력의지에 두려움을 느낀 성종이 여자들을 구속하는 유교 통치 체제를 위해 처형시킨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책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역사에 어우동처럼 시대상황에 맞게 삶이 각인돼버린 여성들을 재조명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선택했지만, 사회구조와 시대상황에 희생됐던 여성들이다. 이들의 삶을 남성과의 관계, 사랑을 통해 조망한다는 점이 새롭다. 사랑을 통해 남녀구도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사랑은 가장 사소하고 개인적인 역사지만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관심사이다”라며 “한국사의 지배층은 남녀의 사랑을 다스리는 데 많은 공을 들였고, 또 사랑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선 숙종은 사랑하는 여인 장옥정을 왕비로 삼기 위해 집권당을 갈아치우며 당쟁을 사생결단으로 격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장옥정은 ‘정치적 야망에 불타오르는 악독한 요부(妖婦)’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에서 서양화를 배운 신여성으로 여성인권운동을 했던 나혜석은 불륜녀로 낙인 찍히면서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권경률 지음

빨간소금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여성에 대한 평가가 남성 위주로 이뤄져 온 문제는 비단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혐오가 기승을 부리고, 여전히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성적대상으로 평가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1934년 공개적으로 ‘이혼고백서’를 발표했다. “조선의 남성들아,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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