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철군 결정으로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을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1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전후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침공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사실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내 미군 철수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우리의 땅이 아니다”라며 “터키가 시리아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터키와 시리아 사이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그것은 터키와 우리 사이의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두 나라가 땅을 놓고 싸우는 사이, 우리의 장병들은 피해를 보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 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거론하며 “여러분 알다시피 쿠르드족의 일원인 PKK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마도 이슬람국가(IS)보다 테러에 있어 더 나쁘고 오히려 더 테러리스트 위협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이 IS 격퇴에 협력해온 쿠르드족을 배신해 터키의 공격을 받도록 내몰았다는 비난에 대한 반격 차원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날 터키로 출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나기로 돼 있는 것과 관련해 “우리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며 협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터키가 옳은 일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담이 성공적이지 않게 되면 터키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에 배치돼 있는 미국 전술핵무기의 안전과 관련한 질문에 “자신이 있다”는 말도 했다. 터키가 미국과의 갈등 속에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인질’로 잡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14일 뉴욕타임스(NYT)는 2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 국무부와 에너지부 당국자들이 터키의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 배치된 약 50개의 전술핵무기를 이동시키는 방안에 대해 조용히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시리아를 침공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공개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낸 지난 9일자 편지에서 “터프가이가 되지 마라. 바보가 되지 마라!”며 시리아 침공 계획을 번복하라고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누그려트리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침공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개된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잘 해결해보자”면서 “당신은 수천 명의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을 것이고, 나도 터키 경제를 파괴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나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며 “세계를 실망시키지 마라. 당신은 훌륭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협상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쿠르드족이 이끄는 시리아 민주군(SDF) 사령관인 마즐룸 코바니 압디의 편지를 동봉했다면서 “마즐룸 사령관은 당신과 협상하고 양보할 의사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일을 올바르게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하면 역사는 당신을 호의적으로 볼 것”이라며 “만약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역사는 당신을 영원히 악마로 여길 것”이라고 경고도 덧붙였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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