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저항 없어 강간 혐의 무죄” 법원, 주거침입만 인정 징역 1년
문 손으로 막고 도어록까지 눌러 명백한 침입 시도 CCTV 영상
“죽을만큼 저항할 정도 돼야 하나” 엄벌 판결이지만 평가는 엇갈려
‘신림동 강간미수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유명했던 30대 남성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쟁점이 됐던 강간미수 혐의가 무죄로 나와 이 판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김연학)는 16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모(30)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지난 5월28일 새벽 6시24분쯤 서울 신림동 부근에서 술에 취해 귀가 중인 여성을 뒤쫓아간 뒤 이 여성의 집으로 들어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는 피해 여성이 원룸으로 들어가자 손으로 문을 치는 방식으로 문이 닫히는 것을 막으려 하다 실패하자 2~3분 간격으로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고, 휴대폰으로 도어록을 비추면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등 집 안으로 침입하려 시도했다. 조씨의 행동이 담긴 CCTV 영상이 유튜브로 번져나가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주거 침입 혐의에 대한 판단은 쉬웠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법정진술 △피해자 진술조서 △현장 사진 및 CCTV 등을 봤을 때 “공동주택의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들어간 때에 이미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하지만 강간 미수 혐의는 달랐다. 재판부는 △조씨가 이른 아침에 피해자의 주거지까지 따라 들어가려 한 점 △피해자를 뒤따라갈 때 모자를 착용한 점 △조씨가 예전에 길 가던 피해자를 강제추행 했으나 합의해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사건 당시 “성폭행할 의도로 피해자를 뒤쫓는 등의 행동을 했다는 의심이 들긴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해자와 함께 탑승한 엘리베이터에서 모습을 확인할 자료가 없고 △피해자 또한 비틀거리면서 갈 정도로 만취했는 데다 △조씨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해자를 곧바로 폭행 또는 협박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에게 ‘술을 한 잔 하자’고 말 걸었다는 조씨의 진술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조씨가 원룸 문을 두드린 것에 대해서도 “조씨의 행위 때문에 피해자가 생명이나 신체에 두려움을 느껴 저항을 포기하거나 위험한 방법을 택해 도망가거나 비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할 정도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강간미수 행위로 인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간죄가 명백히 드러났다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조씨는 사건 뒤 피해자에게 3,0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했고, 서울 생활을 청산하겠다 했다. 피해자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침에 홀로 귀가하는, 알지도 못하는 젊은 여성을 뒤따라가 주거지 침입을 시도한 행위 자체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일반적 주거침입죄 보다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판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법조인들은 원래 강간미수 혐의 적용이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법원이 강하게 처벌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인권정책팀장은 “사법기관은 여전히 피해자가 죽을 만큼 저항할 정도가 돼야 위협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듯 하다”며 “관련 법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녹색 수의에 흰 마스크와 검정테 안경을 착용한 채 법정에 출석한 조씨는 선고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무죄 부분을 공시하겠느냐는 질문에 “하지 않겠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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