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도발인가, 지극히 당연한 분노인가. 비도덕적인 군중 선동인가, 사회 부조리 폭로인가. 영화 ‘조커’를 둘러싼 논쟁이 분분하다.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는 순간,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이기에 한 가지 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조커’가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면서 동시에 문제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조커’에는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조커’는 미국 유명 만화사 DC코믹스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슈퍼히어로 배트맨과 대척점에 있는 악당 조커가 탄생하게 된 기원을 탐구한다. ‘배트맨’(1989)과 ‘다크 나이트’(2008) 등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거나 암시됐던 사연과는 무관하게 조커만의 독창적인 서사를 설계했다.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병적인 웃음과 자기애적 망상 장애로 고통받던 무명 코미디언이자 직업 광대인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별 이유 없이 자신을 폭행하는 금융사 직원 셋을 죽인 뒤, 뒤틀린 내면에 도사린 또 다른 자아를 각성하는 과정을 그렸다. 분노로 들끓던 빈민층은 부유층을 죽인 광대 살인마(사실은 아서)를 영웅으로 추종하고,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와 억압, 상류층의 멸시와 조롱 등 끊임없이 폭력에 시달렸던 아서는 스스로 절대악 조커로 거듭나면서 비로소 분노에서 해방된다.
영화의 저변에는 사회 부조리에서 악이 태동한다는 세계관이 깔려 있다. 변혁의 도구로서 폭력을 일정 수준 용인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판과 지지가 엇갈린다.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선 모방 범죄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앞서 2012년 콜로라도의 한 극장에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도중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던 터라 더욱 민감한 분위기다.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폭력도 지지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국 관객들도 ‘조커’를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모방 범죄나 폭력 미화보다는 영화에 묘사된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에 더 주목한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단순화하면 소외 계층이 폭력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 소외 계층은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존재를 인정받기 힘든 현실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며 “일부에서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고 소외시켰다는 정서적 각성과 함께 보편적 죄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영화에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거나 전복하는 상징이 다수 등장한다. “내 죽음이 삶보다 ‘가취’ 있기를”이라고 번역된 아서의 노트 속 문장인 “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에서 cents라는 단어는 sense(가치)의 언어유희이자 미국 화폐 최소 단위인 ‘센트’를 뜻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아서 같은 하층민은 살든 죽든 푼돈 취급당하고 있다는 절규나 다름없다. 아서의 어머니 이름 페니(Penny)도 센트와 같은 뜻이다. 가사 도우미였던 페니를 내친 금융사 사장 토머스 웨인의 집사 이름이 알프레드 페니워스(Pennyworth)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푼돈보다는 가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담시 시장 출마를 노리는 웨인이 극장에서 관람하고 있는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빈부 갈등과 인간 소외를 비판한 이 영화가 웨인 같은 부유층에겐 한낱 오락이자 웃음거리에 불과한 현실을 은유한다. “내 삶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다”라는 아서의 독백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채플린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부유층에게 빈곤층의 삶은 멀리 있는 희극 같은 삶일 뿐이라고 영화는 은근히 꼬집기도 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극단적 양극화에 시달리다 노이로제와 히스테리에 걸려 버린 아서는 자본주의에 억눌린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다”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자체가 가로막혀 있으면 그에 대한 저항은 무정부주의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오 평론가는 “영화가 못 가진 자들의 분노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며 “영화가 잠재된 분노를 일깨우는 동시에 대리만족을 통해 분노를 순치하는 양가성을 띤다”고도 짚었다.
‘조커’는 상영 14일 만인 15일 400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을 돌파했다. 20대 관객이 전체 관객의 43.1%(CGV리서치센터)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마블 영화 같은 슈퍼히어로물에서 20대 관객 비중이 높게 나타나지만 ‘조커’는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라 예술영화에 가깝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도 수상했다. 미국에서도 ‘조커’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13일까지 수익 1억9,359만달러(박스오피스 모조)를 벌어들였다. 해외 수익은 3억5,470만달러에 달한다. 조커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흥행이다.
‘조커’와 함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계급 갈등을 주제로 다뤘고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세계관을 공유한다. 파국을 부른 근원이 세습된 부가 아니라 소위 자수성가한 신흥 자본가 계층(기생충)과 금융 자본가(조커)로 설정된 것도 비슷하다. 칸영화제가 ‘기생충’을, 베니스영화제가 ‘조커’를 선택했다는 것은 사회 양극화가 현재 세계에 가장 주요한 이슈라는 강력한 방증이기도 하다. 강유정 평론가는 “두 영화가 사회 악으로 제시한 것이 상류층의 무관심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와는 갈등 양상이 달라졌고 계급 간 대결은 피할 수 없다는 ‘증상 보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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