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도이체방크 지점. EPA 연합뉴스

수정으로 제작된 1만5,000달러짜리 말 조각과 최고급 뱅앤올룹슨 오디오 음향시스템(1만8,000달러), 1945년산 ‘샤포 라피트 로쉴드’ 와인(4,254달러).

20년 전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거물급 공산당 지도자에게 건넨 뇌물 목록의 일부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회사 기밀서류 및 내부조사 보고서, 이메일, 임원 인터뷰 등을 입수해 이러한 뇌물 공여 등 불법적인 도이체방크의 중국 사업 성장 과정을 심층 추적한 결과물을 기사로 공개했다. 그리고 “이 은행의 급성장 배경은 불법ㆍ탈법을 넘나드는 전방위 로비 덕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보도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중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2000년대 초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금융시스템 현대화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물량 공세를 퍼부은 경쟁자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와 달리 도이체방크는 이렇다 할 중국 내 전략과 자원이 전무했다. 2000년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요제프 아커만은 정공법 대신 지름길을 택했다. 이른바 ‘꽌시(關係)’로 불리는 중국 특유의 인맥 투자에서 비책을 찾은 것. 말이 투자지 정치의 힘을 빌려 사업상 이득을 얻으려는 속내였다.

아커만은 우선 장홍리(張紅力)라는 인물을 발탁했다. 골드만삭스 베이징(北京)사무소장으로 일하던 장홍리는 중국 태생에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휴랫팩커드 근무 경력을 갖추는 등 동ㆍ서양 비즈니스 사정에 정통했다. 그는 정ㆍ관계 실력자 자제들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다. 금융 지식과 업무 능력은 필요한 스펙이 아니었다. 오직 정치적 활용도가 기준이 됐다.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류윈산(劉雲山ㆍ현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이 이런 식으로 입사했고, 리잔수(栗戰書) 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어린 딸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했다. 내부 평가는 정반대였다. 한 직원이 쓴 이메일을 보면 두 사람 모두 “회사의 자격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최고위급 정치인과 기업가들은 뇌물로 공략했다. 도이체방크는 특히 중국 경제를 총괄하던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 일가 로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가의 수정 말 조각상이 원 총리에게 전해졌고, 그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이 운영하던 사모펀드에는 막대한 투자를 안겼다. 원 총리 며느리가 추천한 인사들도 속속 회사 고위직에 임명됐다. 아커만은 수정 호랑이 조각상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에게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도이체방크는 2002~2008년 사이 20만달러 이상을 공산당 관리와 친ㆍ인척, 국영기업 간부들에게 줬는데, 그중 4분의 1 이상이 중국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과 관련된 인사들이었다. 신문은 “공무원에게 법률 검토를 거치지 않은 선물을 금지하고 있는 회사 정책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비 대가는 달콤했다. 도이체방크 외부 변호사들은 단 19건의 인맥 고용으로 창출한 회사 수입이 1억8,9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회사가 중국은행 지분 매입 및 국영기업 IPO 주간사 선정 대가로 컨설턴트 7명에게 지불한 돈은 1,400만달러. 각종 뇌물과 컨설팅 수수료를 제해도 수십배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도이체방크의 불법 영업 행태는 이제 부메랑이 되어 가뜩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더욱 옥죄고 있다. 회사는 지난 1년 동안 시가총액이 25% 감소했고, 최근 1만8,000명 감원 계획도 내놨다. 앞서 8월 도이체방크는 중국ㆍ러시아에서 부정한 수단을 활용해 사업을 한 혐의가 적발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1,600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는데, 이익에 견줘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금융당국 조사가 진척될 경우 더 큰 처벌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커만은 “회사의 중국 사업 방식은 관행이었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다. NYT는 “수년간 도이체방크는 금융업계 불법의 대명사였다”며 “글로벌 규제ㆍ사법당국이 수십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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