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성형에 미친X” 악플에 여성 연예인 극단적 선택
설리에 “에로배우나 돼라” 12년 지나도 악플 수준 여전
처벌 못하는 경우 많아… “혐오죄 신설 등 형사범죄화 논의를”
‘성형에 미친X’ , ‘관종(관심을 끌려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 짓 할거면 에로배우나 되라’
전자는 2007년 사망한 여성 가수, 후자는 지난 14일 사망한 설리를 향한 악성 댓글이다. 12년이라는 시간차가 무색하게 여성 연예인을 향한 ‘악플’의 수준은 여전하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과 외모비하성 악플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은 연예인만 4명,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경우를 더하면 피해자는 더 많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유명인에 대한 집단적 괴롭힘을 넘어 온라인상에 만연한 혐오 문화가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악플의 화살이 공인이 아닌 시민에까지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난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 약자를 향한 혐오 표현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공간이 현실세계의 불평등을 그대로 재생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롱과 혐오를 오락거리로 삼는 등 차별적 문화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김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는 “연예기획사조차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악플은 하나의 산업이 됐다”며 “이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악플러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혐오 표현은 우리사회 성별불평등과 만나 더 큰 피해를 낳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6~2017년 약 1년 6개월간 1심 판결 사건이 선고된 온라인상 모욕죄 사건 376건을 분석한 결과 혐오표현에 해당하는 경우는 119건(31.6%)이었는데, 이중 95.8%인 114건이 젠더혐오 표현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성적 문란함을 표현하거나(56건), 외모를 품평(22건)하는 경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회장은 “악플과 관련한 도움요청이 많이 오는데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성적 내용이 두드러진다”며 “사회구조상 그게 가장 쉽고 효과적인 모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나마 악플에 대해 ‘모욕’이나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온라인상 혐오발언 대부분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피해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 피해를 당한 20~40대 여성 2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경찰(9.0%)이나 사이트 운영자(33.5%)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거나(38.5%) 탈퇴(38.0%) 등 소극적 대응만 했는데,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31.3%)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악플 피해를 경찰에 신고했던 54명중 6명(11.1%)만이 가해자가 처벌됐다고 응답했다. 서 부회장은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의 신상을 조사해 가지 않는 이상 수사기관은 이 같은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하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해의 정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날뛰는 악성 댓글을 방치할 수만도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피해자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권위 조사에서 온라인 혐오를 경험한 응답자 중 41.5%는 불안과 우울을 경험했고, 사람들이 무서워 밖에 나가는걸 두려워하거나(15.7%) 자살ㆍ자해충동까지 느낀 경우(9.2%)도 상당수였다.
물론 혐오 표현의 처벌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 보호 관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이미 자유의 경계를 넘어 폭력이 된 혐오 표현에 대해선 강한 법적 규제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응방안’을 연구한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명확한 구성요건을 갖추는 전제 하에 ‘혐오죄’ 신설 등 형사범죄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현행 모욕죄가 가해자에게 역으로 이용되는 경우에서 보듯 형사규제는 어디까지나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혐오발언의 피해자가 이에 맞서기 위해 욕설을 했을 경우 상대방이 이를 모욕죄로 고소한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혐오표현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다만 ‘인터넷 실명제’ 의무화는 강력한 대책임에도 2012년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데다 여전히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정보통신망사업자의 혐오댓글 관리 등 자율 규제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은 2013년 악성 댓글ㆍ괴롭힘으로 인해 14ㆍ15세 소녀가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가 나서서 사이버폭력을 조장ㆍ방관하는 사이트들에 대한 광고주의 보이콧을 촉구했다. 트위터에 대해서도 불량 트윗 신고 기능을 확대하도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사회적 책임을 압박했다. 독일은 명백한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물, 영상 등을 신고 받은 후 24시간 내 삭제하지 않는 SNS 사업자에 최대 5,000만유로(약 65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2년 전 통과시켰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정보통신망을 관리ㆍ감독하는 기관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특정 극단적 혐오표현에 대한 자율적 배제ㆍ조사권한을 주고 관리감독의 책임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넷 사업자가 기술을 개발해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특정 혐오단어가 입력되면 경고문구를 띄우는 정도의 기술적 조치만 취해도 피해는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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