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과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으로 민간인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4일(현지시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참여한 연합군의 한 관리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무상으로 러시아가 원하는 결정을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주요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거부하면서 중동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한 이날, 푸틴 대통령이 12년 만에 미국의 중동 최대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밀착을 과시한 게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사우디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등 왕실 지도부를 만나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 이란과 대치 상황 등 중동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또 다양한 분야의 경제 협력도 약속했다. 사우디 외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우호를 증진하고 농업, 항공, 보건, 문화 분야에서 20건의 협약과 100억달러(약 12조원) 규모로 합작 법인 30개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NYT는 러시아가 전날 터키군 저지를 위해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쿠르드족이 손을 잡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잭 리드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득이 되는 충동적인 판단으로 동맹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NYT에 밝혔다.
특히 미 언론은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인 이란뿐 아니라 이란과 적대 관계이자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와도 새로운 관계 구축에 나서는 등 분열된 중동의 모든 세력에 대화 창구를 열어 놓는 푸틴 대통령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중동 화약고에 불을 붙인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와 대조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방의회 외교위원회의 블라디미르 다르자로프 부위원장은 “러시아는 한편과 우호관계를 맺고 그 반대편과도 우정을 쌓으면서 불확실성을 심고, 거래와 전쟁도 함께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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