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원 들였지만 北 협의 거부… 13년간 이산가족 영상편지 2만여편 제작, 25편만 전달
통일부가 북측에 보내기 위해 구입한 이산가족 화상상봉 장비가 7개월째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과 교환하기 위해 13년 동안 제작한 2만여편의 이산가족 영상편지도 단 25편만 북측에 전달됐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군사긴장 완화 등도 시급한 현안이지만, 고령인 이산가족의 상봉 문제도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산가족 화상상봉 재개에 27억7,900만원을 투입했다. 본보 취재 결과 이 가운데 4억8,000만원이 지난 4월 북측에 보낼 화상장비(TV, 영상단말기, 조명설비 등) 구입에 쓰였다. 이어 20억원이 서울, 광주, 부산 등 13개소 화상상봉장 개ㆍ보수에 사용됐다. 나머지 3억여원은 사업관리와 운송ㆍ보관을 위한 경비에 썼다. 남북 화상상봉장에는 모니터, 카메라 등 기존 설비가 남아있지만, 2007년 이후 사용하지 않아 보수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은 지난해 9월 체결한 9ㆍ19 평양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찔끔찔끔 이뤄지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공감대도 이뤘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에 보낼 화상장비를 구입하는 동시에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 허가까지 받아 놨다. 하지만 북측이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과 남북관계 경색을 이유로 관련 협의를 거부하면서 장비 전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통일부가 북측과 교환하기 위해 제작한 이산가족 영상편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만1,062편의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제작했다. 이 가운데 북측에 전달된 영상편지는 2008년 시범사업으로 보낸 25편에 불과하다. 이어 1,568편을 ‘남북이산가족 디지털 박물관’ 등의 웹사이트에 올렸을 뿐 나머지 1만9,469편은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13만3,353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올해 8월까지 사망자는 절반이 넘는 7만9,466명(59%)으로 나타났다. 생존자 5만3,887명 중 70세 이상의 고령은 4만6,192명(85%)에 달한다. 박정 의원은 “이산가족 어르신의 고령화가 심각해 매년 3,000~4,000명이 사망하고 있다”며 “정부가 북미 대화만 기다릴 게 아니라 평양공동선언 합의대로 화상상봉이나 영상편지 교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