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 18일 사라진 김모양
9차 현장 옆 치마·책가방만 발견 시신도 찾지 못한 미제사건 남아
1988년 겨울 ‘수원 화서역 시신’여고생 살인사건도 추가로 자백
李, 14건 모두 그림 그리며 설명
화성연쇄살인사건의 8차와 9차 사이에 발생한 초등학교 2학년 실종사건의 범인도 이춘재(56)로 확인됐다. 초등생 실종사건 당시 경찰이 화성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춘재는 당시에도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는 15일 브리핑을 통해 이춘재가 화성 10건 외에 나머지 4건은 수원과 화성 각 1건, 청주 2건 등 모두 4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화성 사건 외에 4건에 대해서는 그동안 온갖 추측이 무성했지만 경찰이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춘재가 자백한 4건은 그동안 본보가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을 모아 보도했던 내용 중에 모두 포함된 것들로 확인됐다.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년 7월 18일 낮 12시30분쯤 태안읍 진안리에 사는 김모(당시 9세)양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사건이다. 화성 8차 살인(1988년 9월 16일)과 9차(1990년 11월 15일) 살인 사이 시점이다.
김양 아버지(당시 37세)는 경찰에 수사요청을 했지만 경찰은 단순 실종사건으로 보고 목격자 조사만 한 뒤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6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시 입었던 치마와 책가방이 발견됐다. 화성연쇄살인 9차 현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지점이었다.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그가 강도 예비혐의로 구속(1989년 9월 26일 구속됐다 1990년 4월 19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남) 상태여서 대면조사 없이 서류상 검토만 하고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수사본부 관계자는 “대상자(이춘재)가 ‘(김양에 대해) 당시 성폭행 살해 후 시신을 현장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며 “하지만 이춘재가 당시 구치소에 있었고, 현재 기록이 많지 않고 당시 증거물이 오염돼 혈액형 등이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서면 조사만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사건은 1987년 12월 24일 여고생(당시 18세)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한 뒤 실종됐다가 10여 일 뒤인 1988년 1월 4일 화성과 인접한 수원 화서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화성 사건과 같이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이 사건도 화성 6차(1987년 5월 2일)와 7차(1988년 9월 7일) 사이에 발생했다.
두 사건은 이춘재가 청주로 이사한 뒤 청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991년 1월 청주시 복대동 택지조성공사 현장 내 콘크리트관에서 여고생(당시 17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상의가 벗겨진 채 옷가지로 입이 막히고 양손이 묶여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 주변에 살던 19살 박모 군을 용의자로 체포했고, 이후 박군은 2년 넘게 옥살이를 하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야 풀려났다.
1991년 3월 7일 오후 8시쯤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한 셋방에서 주부 김모씨(당시 27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김씨는 양손이 결박되고 입에 스타킹이 물려 있었다. 가슴에서는 흉기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화성 8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침입 범죄로 기록됐다.
이날 수사본부는 이춘재가 밝힌 14건의 살인사건이 확인됨에 따라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14건의 사건에 대해 당시 지형·지물을 그려가며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지난 14일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3·4·5·7·9차 사건의 범인으로 이춘재를 확정,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상태다.
하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고 해서 수사가 진척되거나 처벌 가능성 등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당시 수사기록, 증거물 등이 대부분 폐기됐기 때문이다. 또 거짓말 탐지기 동원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이어서 남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 나갈 것”이라며 “현재 남은 증거물을 지속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할 계획이며,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최대한 이끌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게 수사본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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