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천체물리학자들. 왼쪽부터 캐나다계 미국인 제임스 피블스(84), 스위스의 미셸 마요르(77), 디디에 쿠엘로(53). 연합뉴스

무릇 노벨상의 계절이다. 먼저 스물네 번째 노벨상을 받은 일본 국민과 과학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당분간 일본 브랜드 옷도 입지 않을 테고 일본으로 관광 갈 일도 없지만 축하는 진심이다. 우리는 이웃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짜증나는 요구와 피곤한 질문을 받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만한 것에 누가 노벨상을 주겠는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업적을 잘 아는 물리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생리의학상과 화학상도 마찬가지다. 좁은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제대로 아는 것이고 전문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공부해야 설명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 내역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성인에게도 어렵다.

첫 번째 요구를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마지막에 피곤한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을 받게 될까요?”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이 질문을 받지 않고 넘어간 해는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것도 무려 평화상! 노벨상의 꽃 평화상! 평화상 따위는 노벨상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분들에게는 노벨상은 생리의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오직 세 가지만 보이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15년간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동안 못 받을 겁니다.”

이런 부정적인 대답에 달가워할 방송 진행자는 없다. “왜?”라고 따져 묻는다. 혹시 과학자가 부족한가? 설마! 우리나라는 과학자들이 넘쳐난다. 전문가가 없는 세부분야가 없을 정도로 과학자들이 촘촘하게 존재한다. 이공계 박사의 75%가 비정규직으로 인생을 시작할 정도로 과학자들은 넘쳐난다. 심지어 일자리가 없는 과학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연구비가 없어서 그런가? 역시 아니다. 우리나라 연구비는 액수로만 따져도 세계 4,5위권에 속한다. GDP 대비 R&D 예산은 세계 1위다. 적어도 연구비로만 보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다.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는지 또는 기초과학에 얼마나 투여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테니 적어도 연구비가 없어서 노벨상을 못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 과학자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할 만하다. 오죽하면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꿈으로 53년 전 한국과학기술원 만들어 줬으면 지금쯤 노벨과학상 나와야 하잖아요!”라는 질타가 나왔겠는가. 과학자들의 노력이 부족하고 마음가짐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너무 열심히 하는 게 탈이다. 물론 무슨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닐 테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도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연구과제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 이게 바로 문제다.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의 과학기술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요시노 아키라가 한 대답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기초 연구는 열 개 중 한 개가 맞으면 좋은데, 지금은 쓸데없는 부분만 문제 삼아서 예산을 깎는다.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무엇에 쓸 수 있는지 따지지 말고 자신의 호기심에 근거해 새로운 현상을 열심히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

한국 연구재단이 최근 10년간 노벨상 수상에 기여한 핵심논문을 조사했다. 수상자의 나이는 평균 57세다. 핵심 논문 생산에 17년이 걸렸고 그 후 노벨상을 받을 때까지 14년이 걸렸다. 연구를 시작해서 노벨상을 받을 때까지 31년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들은 대부분 17년간 쓸데없는 일 하면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노벨상을 못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3년 안에 쓸모 있는 것을 찾아내는 연구를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쓸데없는 일을 할 틈이 없다. 그 쓸데없는 게 수십 년이 지나면 쓸모가 생기는 법이고 노벨상도 타게 되는데 말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는 노벨 과학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위스의 천체물리학자 미셸 마요르 박사는 77세다. 그는 30여 년간 외계행성을 찾아 헤맸다. 스위스 CERN에서 그의 콜로퀴움에 참석했던 물리학자 박인규 교수는 “아, 저렇게 재미없는 일을 평생하다니…”라며 감명 받았다고 소회를 적었다.

과학은 쉬운 게 아니다. 과학연구는 전혀 신나는 과정이 아니다. 어렵고 지루하다. 똑똑함보다는 끈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과학자들의 노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는 우리의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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