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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칙칙폭폭과 쿵쾅쿵쾅

입력
2019.10.1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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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은 단 한 글자도 가볍지 않다. 악의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하지 않다. 피해자는 오해하지 않는다. 그 모든 단어들은, 자갈이 아니라 바위다. ©게티이미지뱅크
악플은 단 한 글자도 가볍지 않다. 악의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하지 않다. 피해자는 오해하지 않는다. 그 모든 단어들은, 자갈이 아니라 바위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지금까지 변호사로 일하며 대략 수십만 건의 악성 댓글이나 게시글을 읽었다. 십오만 건 넘게 본 것은 확실하고, 오십만 건 까지는 아마 안 될 것이다. 나는 이 칼럼의 인터넷 링크 하단에 게시될 것을 포함하여, 오늘날 빈번히 쓰이는 비하 표현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요즈음은 타인에 대한 공격은 직설적인 욕설일 때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비하나 차별 표현의 양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자음만 쓰거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빌리거나, 애매한 합성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런 비하 혹은 차별 표현들은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상흔을 낼 수 있되, 맥락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무지를 가장할 수 있을 만큼 모호하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건에서, 나는 우리 측 증인에게 “기억에 남는 모욕적인 말을 모두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여러 표현을 말하다가 “칙칙폭폭”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재판장님이 “칙칙폭폭”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증인은 자신이 광주 출신이고, 칙칙폭폭이라는 말은 기차의 경적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기도 하지만 일베라는 커뮤니티에서 광주민주항쟁을 폭동으로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껴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다른 사건의 고소대리를 하던 중, 수사관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쿵쾅쿵쾅”이라는 댓글을 왜 고소했는지 물었다. 나는 당시 “쿵쾅쿵쾅”이라는 말이 특히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그 여자는 멧돼지처럼 뚱뚱하니까 쿵쾅쿵쾅 큰 소리를 내며 걸어다닐 것”이라는 모욕적 의도를 담아 널리 유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두 표현의 이런 다른 의미를 이 글을 통해 처음 안 독자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반면, 일상에서 읽은 적이 있거나 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사용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별 희한한 유행어를 다 쓴다니까”라고 말하고 넘어갈 만큼 가볍다. 맥락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들은 강력하다.

이런 비하 및 차별 표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가벼움을 위장한다. 둘째, 변명의 여지를 남긴다. 셋째, 악의의 유대를 형성한다.

어린 시절 배우는 의성어와 의태어, 동요나 동화책의 가벼움을 훔친다. 쿵쾅쿵쾅 걷거나 뛰는 것은 아주 많고, 대부분 딱히 부정적인 맥락이 없다. 이처럼 비하 표현은 이미 널리 쓰이는 친숙한 단어나 이미지를 훔쳐 그 악의의 무게를 숨긴다.

이 특징은 두 번째 공통점인 변명의 여지로 이어진다. 가벼운 표현에 무거운 악의를 담은 사람들은 막상 문제가 되면 백이면 백 “몰랐다”고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칙칙폭폭 게임을 했을 뿐이고 그냥 장난인 줄 알았을 뿐이고 자음만 썼을 뿐이고 해석을 잘못 했을 뿐이고 여하튼 이거든 저거든 몰랐을 뿐이다. 무지는 잘못일 수도 있고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형법적으로 따지자면 범죄의 성립에는 고의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법적 해석과 별개로, 발화자가 몰랐다고 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상처를 덜 받지는 않는다.

셋째로, 비하와 차별의 뜻을 담은 가벼운 유행어는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 기이한 유대를 만들어 낸다. 낄낄 웃으며 한두 마디 단어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너도 이 말을 아는구나” “그래, 역시 우리 모두 이만큼은 나쁘지”라는 악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 정도 한두 마디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이 정도의 말에 담긴 악의는 그다지 악하지 않고 무겁지 않다는 착각이 이 유대감을 타고 널리 퍼진다.

그러나 소위 악플은 단 한 글자도 가볍지 않다. 악의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하지 않다. 피해자는 오해하지 않는다. 그 모든 단어들은, 자갈이 아니라 바위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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