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포털은 연예기사마다 붙어 있는 댓글란을 없애고 관련 연예인의 개별 게시판으로 연결하면 어떨까? 기사마다 달려 있는 비수같은 댓글에 상처입은 연예인들을 지켜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이상 시간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인기와 인권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다. JTBC2 ‘악플의 밤’ 영상 캡처

설리(본명 최진리)라는 젊은 연예인이 스러졌다. 시간이 좀 더 흘러야 그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설리는 많은 이들이 댓글로 희롱하고 괴롭혀 온 대표적인 연예인임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댓글에 괴로워하다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생명을 버린 연예인이 너무 많아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인터넷 댓글문화, 특히 포털의 댓글 문화는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전혀 변함이 없다.

연예인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자유로움에 그 업의 본질이 있다. 그런데도 조금만 특이한 복장이나 화장을 하면, 이성교제 상대를 드러내기라도 하면, 게다가 그 연예인이 여자라면, 언론은 그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클릭수를 올렸다. 거기에 근거없는 소문과 편견과 루머까지 섞여들면 사실 여부나 연예인 개개인의 인권 따위는 사라졌다. 수년 전, 설리가 오랜 연인과 헤어졌을 때, 대중이 만들어 놓은 그녀의 이미지와 망측한 상상이 결합해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성희롱을 담은 댓글이 온 포털을 휘감았다. 어느 누가 그런 생지옥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담대하게 견뎌 낼 수 있을까?

설리는 자못 당당하고 의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언론과 여론의 잔인한 괴롭힘을 견뎌 내기는 힘들었다. 연예인을 둘러싼 가십으로 먹고사는 일부 언론은 한 가지 가십거리를 찾아내면, 서로를 베끼고 또 베끼며 수천, 수만 건의 비방과 조롱을 만들어 낸다. 관심을 가장한 온갖 가십성 뉴스의 은하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그들은 루머를 더욱 조장하는 제목을 단다. 대중의 반응이 커지면 언론은 마치 해당 연예인을 걱정해 주는 척하며 또다른 기사를 계속해서 써 댔고, 일부 네티즌의 망측한 댓글을 확대재생산하기도 했다.

예인(藝人)을 광대로 천시했던 조선시대보다 더 경멸적이고 파괴적인 시선으로, 언론은 연예인에게 자유로움 대신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엘리트 윤리를 강요했다.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은 자유분방한 가치를 표출하는 예술인이면서 동시에 사회규범을 일반인보다 훨씬 잘 지키는 도덕적 표상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한 번도 요구한 적 없는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포털에는 연예인을 속박하고 왜곡하는 기사가 넘쳤고, 대중은 그 장단에 춤추며 연예인을 증오와 경멸과 희롱의 대상으로 소비했고, 익명성에 숨어 수많은 루머로 연예인들을 계속해서 절망의 벼랑 아래로 떠밀었다.

이 지긋지긋한 조리돌림 시스템은 결국 해당 연예인의 인기가 떨어지거나, 은퇴하거나, 사망하거나, 법에 의지해 가해자를 처벌해야 끝나는 시스템이다. 용기를 내 법정의 문을 두드려도 언론과 호기심 많은 네티즌들은 법정공방의 한 단계 한 단계를 또다른 가십거리로 소비한다.

결국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고된 기획사 생활을 뚫고 살아 남았지만 마음은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똑같이 여린 연예인들을 댓글이라는 무기로 씹고 씹고 또 씹어 아주 성능좋은 파쇄기처럼 완전히 작살을 낸 뒤 마지막으로 연예계 은퇴나 죽음이라는 뉴스를 통해 끝까지 그 세속적이고 탐욕스런 욕망을 배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주 고약한 시스템의 운영자인 것이다. 여기에 경쟁만을 조장하며 돈이 되는 스타를 골라내는 데에만 특화되어 있는, 연예 기획사의 무관심과 방관이 함께 작동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루머를 복제한 수만 건의 기사마다 일일이 달려 있는 또다른 수만 건의 댓글을 견뎌 낼 강심장은 없다. 차라리 포털은 연예기사마다 붙어 있는 댓글란을 없애고 관련 연예인의 개별 게시판으로 연결하면 어떨까? 기사마다 달려 있는 비수같은 댓글에 상처입은 연예인들을 지켜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이상 시간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인기와 인권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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