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사이. 간절기 패션 아이템은 단연 패딩(Paddingㆍ깃털이나 솜 등을 넣고 누빈 옷)이었다. 얇고, 가볍고, 따뜻한 데다 저렴하기까지 하니 대적할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패딩은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패션 세계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받기 마련이다. 올 가을, 플리스(Fleece)가 패딩의 아성에 도전한다.
마치 한 마리 양을 연상시키듯 곱슬거리는 플리스는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를 가공해 양털 같은 느낌을 내는 보온 원단이다. 복슬복슬한 모양 때문에 ‘뽀글이’라는 별명도 있다. 1984년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암벽등반 등 산악 활동할 때 입기 좋도록 플리스를 겉감으로 사용한 것(레트로X 재킷)이 시초다. 이후 플리스는 주로 등산, 캠핑 등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에서 즐겨 사용됐다.
플리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유니클로를 비롯해 SPA(제조ㆍ유통 일괄) 브랜드에서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플리스 제품을 선보이면서다. 일본식 발음인 ‘후리스’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플리스는 가벼우면서 따뜻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관리도 편하다”며 “방한복으로 주로 입는 패딩에 비해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고, 원단 특성상 부드럽고 편한 이미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용적인 실내복으로 인기를 입증한 플리스는 올해는 겉옷으로의 가능성까지 넘보면서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 유니폼처럼 입거나, 집 앞에 잠시 나갈 때 편안하게 걸치는 일상복으로 쓰였던 기존 용도를 넘어 개성 넘치는 외출복으로 활동 반경을 대폭 넓혔다. 우주복에 사용했던 소재(신슐레이트)를 덧대고, 거위털을 넣어 보온성을 강화했고, 절개선을 넣고 기장을 늘려 부피감을 줄인 덕이다. 눈과 비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어텍스 등 등산복 소재를 활용한 리버서블(reversible) 디자인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가수 이효리가 방송에서 입어 화제가 됐던 ‘롱 플리스 코트’를 만들었던 하이드아웃 관계자는 “보온 기능을 강화하고, 기장이 긴 코트나 겉옷처럼 입을 수 있는 아노락(후드 달린 상의) 등 디자인이 다양해지면서 자신의 체형과 상황에 맞춰 플리스의 활용도도 높아졌다”며 “모피의 풍성함과 패딩의 보온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도 가격은 모피나 패딩에 비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꺼리는 친환경 패션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것도 플리스의 위상을 상승시켰다. 파타고니아는 1993년 이후부터 폐플라스틱 병, 자투리 원단, 헌 옷 등을 모아 만든 재생 폴리에스테르로 제품을 만든다. 최근까지 이를 통해 절약한 석유 사용량은 약 2만배럴(약 317만L)에 달한다. 김홍기 패션 평론가는 “요즘 패션계에서는 단순히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초점을 두지 않고,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따진다”며 “플리스는 엄밀히 따지면 썩지 않는 합성섬유지만, 재활용이 가능하고 실제 동물의 털 대신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양털처럼 따뜻하지만 자칫 양처럼 통통한 체형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원단 특성상 부피감이 있어 체형이 큰 사람이 입으면 더 커 보인다. 웬만큼 마르지 않고서야 소화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허리끈이나 안쪽에 고무줄을 부착해 허리선을 잘록하게 해 주거나, 무게가 있는 소재를 덧대 살짝 털을 가라앉혀 주는 디자인이 많이 나와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 관계자는 “길이가 긴 코트 형식 플리스는 허리 중간에 벨트로 실루엣을 잡아주면 좀 더 갖춘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고, 전체적으로 플리스가 들어간 것보다는 소매, 가슴, 어깨 등에 다른 소재를 믹스매치한 것을 고르는 것이 체형 보완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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