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의심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되며, 유해성 논란을 앞서 겪은 미국 사회와 정부 대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가 큰 인기를 끈 것은 2015년 무렵부터다. 비슷한 시기 한국이나 일본에서 아이코스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먼저 출시된 데 반해 미국은 쥴 같은 액상형을 먼저 판매 승인한 탓이다. 특히 청소년 층 사이에서 과일향을 첨가한 이른바 가향(加香) 전자담배가 유행하며 미국 내 액상형 전자담배 돌풍을 이끌었다. 미 식품의약국(FDA)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고등학생 21%가 최근 한 달 사이 “전자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전년도 11%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미 질병통제센터(CDC)는 지난해 미 고교생 전자담배 흡연자는 360만명으로 전년(210만명)보다 78% 증가했다고 집계했다.
짧은 기간 사용자 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중증 폐질환 환자 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CDC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중증 폐질환 환자는 1,299명(8일 기준)이며, 이 가운데 26명이 사망했다. CDC는 지난달 19일 같은 조사에서 환자 530명 가운데 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불과 한 달도 안돼 사망자 수가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흐름에 따라 미 정부와 주요 유통망은 액상형 담배 퇴출에 나섰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최근 전자담배 판매 중단 방침을 각 지역 유통망에 하달했고,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도 전자담배를 더 이상 들여오지 않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6월 이미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으며, 미시간주와 뉴욕주 역시 지난달 가향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시킨 상태다. 논란이 커지자 백악관은 지난달 11일 FDA와의 회의 끝에 가향 전자담배를 시장에서 전면 퇴출시키기 위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미 당국 역시 액상형 전자담배가 중증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결정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CDC가 중증 폐질환 환자 86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77%가 마리화나에서 향정신성 효과를 내는 카라비놀수소(THC) 성분 제품을 흡입한 것으로 나타난 점에서 폐질환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그럼에도 미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대대적 퇴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심각한 수준의 청소년층 사용률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미 정부가 청소년 사용률이 높은 가향 전자담배를 우선적으로 퇴출시키고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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