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주의 환기에도 인명 피해 70명 넘어

13일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동반한 폭우로 제방이 붕괴되면서 물바다가 된 나가노현 나가노시 호야쓰 지구가 14일에도 여전히 흙탕물에 잠겨 있다. 나가노=교도 연합뉴스

재난관리 선진국인 일본에서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퍼부은 엄청난 비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NHK는 14일 오후 8시50분 기준 이번 태풍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사망 58명, 실종 14명, 부상 211명으로 집계했고, 침수지역의 물이 빠지고 수색이 진행되면서 희생자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이 태풍 상륙 사흘 전부터 “이번 태풍은 사망자가 1,269명에 달했던 1958년 태풍에 필적할 것”이라며 주의 환기에 적극 나섰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망ㆍ실종자를 합해 70명이 넘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요인으로 최근 빈발하는 폭우 등 기후변화 속도에 미치지 못한 치수(治水) 능력이 꼽힌다. 일본 정부는 3만5,000개 이상의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과 댐 건설, 정비 등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연간 3,600억엔(약 3조9,400억원)에서 1990년대 들어 1조엔(약 10조9,400억원) 전후로 증가했고 올해는 8,500억엔(약 9조3,000억원)이 책정됐다. 방재 선진국이라 불릴만한 예산 규모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급증하고 있는 대형 호우를 감당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마치(箱根町)의 24시간 강우량은 942.5㎜였다. 전국 102개 지역 기상관측 사상 최대기록을 경신했다. 홍수 등 재해 위험이 높은 ‘24시간 400㎜ 이상’강우량을 기록한 횟수는 1979~1998년 121회에서 1999~2018년엔 251회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토교통성은 주변 인구 등을 고려해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폭우를 상정해 ‘슈퍼 제방’ 정비를 추진했으나 일반 제방보다 10~15배의 비용이 들어 재원 부담이 지적돼 왔다. 민주당 정권 때 ‘슈퍼 낭비 제방’이라 불리며 폐지됐다가 수도권과 긴키(近畿) 지역의 대도시 주변에 한해 부활한 전례가 있다.

하기비스가 초대형 태풍에 익숙하지 않은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것도 피해가 컸던 요인 중 하나이다. 이번에 하천 범람 피해를 입은 도호쿠(東北)와 간토(關東)지역을 통과한 태풍 횟수는 2011년 이후 규슈(九州)지역보다 20~40% 적다. 국토교통성 관계자는 “강력한 태풍 경험이 적은 도호쿠 지역에서의 대비를 한층 의식하고 있었다”고 밝혔지만, 하기비스로 동일본 지역에선 이날까지 31개 하천의 51곳에서 제방 붕괴가 발생했고 176개 하천이 범람했다.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가 자정 이후 새벽에 발생하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고령자 주민들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대규모 인명피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쿠마(千曲)강이 범람해 물바다가 된 나가노(長野)시 호야쓰(穂保)지구에선 12일 오후 3시30분에 ‘호우 특별경보’가 발령됐고 오후 6시에 피난 권고, 오후 11시40분에 피난 지시가 내려졌다. 이후 자정에 범람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다음날 오전 6시30분 제방 70m 정도가 붕괴된 것이 확인됐다. 13일 자위대 헬기로 구조된 요시무라 시즈코(86)씨는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설마 이렇게 물이 늘어날 줄은 몰랐다. 만만하게 본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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