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서 77% 득표… 대통령 당선 확실시
‘아랍의 봄’ 발원지인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향후 5년을 정치 경험이라곤 전무한 전직 법학 교수가 이끌게 됐다. 13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약 20년간 헌법학을 가르치다 이제 막 정치판에 뛰어든 카이스 사이에드(61)가 압승을 거둔 것이다. 부패한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 아웃사이더’가 경제상황 악화로 신음해 온 튀니지를 살려낼지 주목된다.
영국 가디언과 BBC 방송에 따르면, 무소속인 사이에드와 ‘언론계 거물’ 나빌 카루이(56)가 맞붙은 이날 대선 결선투표의 출구조사에서 사이에드는 72.5~76.9%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자인 카루이는 40%포인트 이상 뒤진 27%가량에 머물렀다. 공식 결과는 14일 발표된다.
그러나 압도적인 득표율 격차에 비춰, 사이에드의 대통령 당선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이미 사이에드 본인도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 젊은 세대가 선거 운동을 이끌었고, 난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새로운 튀니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교수직 은퇴 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이에드는 엄격한 보수 성향 탓에 ‘로보캅’으로 불린다. 사형제와 동성애 처벌 지지는 물론, 남녀 동일 상속에 반대하고, 외국 비정부기구(NGO)의 튀니지 내 활동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렴한 이미지와 반(反)기득권 메시지를 앞세워 젊은 층의 몰표를 받았다. 서구화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이 극에 달했던 탓이다. 앞서 지난달 17일 대선 1차 투표에서 그가 1위(18.4% 득표)에 오르고, 민영 언론사 소유주이지만 역시 ‘정치 신인’인 카루이가 2위(15.6%)를 차지한 것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다만 사이에드의 앞에 놓인 과제는 결코 녹록지 않다. 튀니지 국민들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장기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높은 실업률과 오랜 경기 침체는 전혀 해결되지 않아서다. 미국 컬럼비아대 사프완 마스리 교수는 가디언에 “경제 개혁 부재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이 튀니지 유권자들의 마음에 뿌리 박혀 있다”며 “각료 출신 후보들이 외면을 받은 건 ‘우리가 지지해 줬음에도 당신들의 약속은 실패로 끝났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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