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에는 출판계의 가장 큰 이벤트가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다. 예전엔 수상자 발표 후 출판계는 반짝 호황을 누렸다. 주요 문학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상작을 번역 출간하며 수상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저작권 적용이 엄격해지면서부터는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들 위주의 특수가 됐다. 그래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이후 3~6개월만큼은 만년 불황인 서점가 자체에 활기가 돈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 수상자까지 한꺼번에 발표된 터라, 출판계 입장에서도 이례적인 특수를 기대해 볼만하다.
현재 국내 번역 출간돼 있는 페터 한트케(2019년 수상자)의 저서는 ‘관객모독’과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비롯해 총 7종이고, 올가 토카르추크(2018년 수상자)의 저서는 ‘태고의 시간들’과 오는 20일 출간될 ‘방랑자들’을 포함해 총 3종이다. 단독 수상에 비해서 출간 종수 자체도 많다.
◇노벨상 발표 직후 100배 이상 판매고
올해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주요 온라인 서점들이 발표한 수치를 종합하면 발표 이후 4일간 서점 별로 1,000부 이상 판매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시간 목요일 저녁 시간에 발표돼, 주말을 거치면서 판매 수치가 급증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수상 발표 다음날까지 각각 230권(페터 한트케), 170권(올가 토카르추크)에 불과했던 판매량이 주말 이후 월요일 오전까지 1,000권(한트케), 800권(토카르추크)으로 훌쩍 뛰었다. 또다른 온라인 서점 Yes24의 경우 4일 동안 한트케의 도서가 828권, 토카르추크의 도서가 607권 팔리며 수상 직전 일주일 대비 각각 118배, 87배 상승을 보였다. 교보문고 역시 14일 오전 기준 한트케의 도서가 990권, 토카르추크의 도서가 510부 팔리며 전주보다 각각 123배, 127배의 상승을 보였다. 두 작가 모두 전주 판매량이 7~8권에 불과해 사실상 판매가 거의 없는 작가였다. 노벨 문학상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오르한 파묵, 가즈오 이시구로 뛰어넘을까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모두 특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전통 문학과는 거리가 먼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면서 특수가 사실상 실종된 상태였다. 2015년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논픽션 작가였고,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은 뮤지션이라 마땅한 대표작도 없는 상황이었다. 잇따른 비문학 작가들의 수상 직후 2017년 수상자가 된 가즈오 이시구로는 장편 7편과 소설집 1편이 모두 국내 번역돼 있는 순문학 작가로, 수상 후 2년 동안 22만부가 팔려 2010년대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작가가 됐다. 2000년대로 범위를 넓히면 2006년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1위를 차지한다. 파묵은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의 수상 전 판매량이 3만부였는데, 수상 직후 30만부가 팔려 폭발적인 시장 반응을 이끌어냈다.
판매량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작가는 2013년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로, 발표 이전에 국내 출간 종수가 3권에 불과했다가, 수상 후 7권이 출간되면서 무려 1,262배의 판매 신장을 기록했다. 박하영 알라딘 도서팀장은 “수상 작가 모두 이미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통해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작가이고, 이번 수상으로 관심과 인지도가 더욱 높아진 만큼 지속적으로 판매량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올해의 승자는 민음사와 은행나무
작가의 인지도 여부도 노벨 문학상 특수에 영향을 끼치지만, 주요 판권을 갖고 있는 출판사의 규모나 마케팅 역시 수상 효과를 키우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2008년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의 경우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작품들이 발표 직후 몇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지만, 출판사 뿔에서 나온 작품은 당시 2,000부 남짓 판매에 그쳐 특수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올해는 전통적인 세계문학 강자 민음사와 한 방이 제대로 먹힌 은행나무가 가장 크게 웃었다. 민음사는 앞서 가즈오가 펴낸 소설 8권 중 7권을 국내 출간해 가즈오 특수를 크게 누렸다. 올해도 한트케의 대표작인 희곡 ‘관객모독’과 장편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한 상태다. 여기에 토카르추크의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 ‘방랑자들’이 21일 출간되는 데다 ‘낮의 집, 밤의 집’과 ‘죽은 자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의 판권도 갖고 있어 올해 노벨 문학상의 최대 수혜자 자리를 예약했다. 지난 1월 토카르추카의 ‘태고의 시간들’을 출간한 은행나무는 처음으로 ‘노벨상 특수’를 맞았다.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작가로 초판 2,000부도 소화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더욱 반가운 소식이 됐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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