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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이사벨라 버드, 시대를 넘다 (10.15)

입력
2019.10.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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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젠더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세계를 누빈 이사벨라 버드 비숍. 뉴욕공립도서관 사진.
빅토리아 시대 젠더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세계를 누빈 이사벨라 버드 비숍. 뉴욕공립도서관 사진.

빅토리아 시대(1839~1901)의 여성들에겐, 물론 아등바등 일할 필요 없는 중ㆍ상류층 ‘레이디’들 얘기지만, 신사의 에스코트 없이 혼자 외출하는 게 흉한 짓이었다. 스스로를 하찮게, 품위 없이 대하는 짓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래 심줄로 만든 코르셋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그 위에 철사 새장 같은 페티코트 ‘크리놀린(Crinoline)’을 두른 뒤에야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었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풍성한 드레스는 그 자체로 상류층 여성의 패션코드이자, 품위와 정결의 상징이었다. 찰스 디킨스가 분노했던 도시 뒷골목의 가난과 해외식민지들의 비참 위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그렇게 풍요로웠다. 여성들의 드레스는 그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코번트리 패트모어라는 시인이 1854년 썼다는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라는 시가 있다. “그녀의 사랑은 지칠 줄 모른다/ 비통하게 혼자 사랑할 때에도/ 그 사랑은 열정적 의무감으로 더 아득히 솟구친다/ 마치 풀들이 바위를 압도하며 자라듯이(…)” 남편이 제국주의 군인이나 관료로 혹은 상인으로 집을 비우더라도, 여성은 천사 같은 사랑으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게 요지다. 집안의 천사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이상이자 롤모델이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0.15~ 1904.10.7)은 달랐다. 성공회 사제의 딸로 태어난 그는 23세이던 1854년 미국을 다녀온 뒤 거의 평생 한국 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10권이 넘는 여행기를 썼다. 만성 두통과 등 통증을 못 견뎌 요양차 시작한 여행이라지만, 해외 선교에 우호적이던 사제 집안의 전통 덕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교나 요양보다 여행을 원했다. 여행도 그냥 유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아이누족들과 함께 지냈고, 인도 여행 땐 영국스러움이 지겨워 산맥 너머 카슈미르의 라다크까지 나아갔다.

무릇 ‘레이디’라면 말을 타도 다리를 모으고 한쪽으로 걸터앉아야 하던 때였다. 그는 40대 초 하와이 원주민들에게서 안장에 제대로 앉아 말 타는 법을 익혔다. 베스트셀러 여행작가인 버드가 ‘레이디답지 않게’ 말 위에서 가랑이를 벌렸다는 기사가 영국 신문에 스캔들처럼 실리기도 했다. 그는 여성으론 처음 1892년 왕립 지리학회 회원이 됐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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