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복회, “왕산광장ㆍ왕산루 원안대로 추진하라” 촉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복회, “왕산광장ㆍ왕산루 원안대로 추진하라” 촉구

입력
2019.10.14 15:09
0 0

회원 30여명 광복회 대구시지부서 장세용 구미시장에 호소문 발표

왕산 선생의 후손인 허경성 옹과 광복회 대구시지부 회원들이 14일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2층 강당에서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원안 유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왕산 선생의 후손인 허경성 옹과 광복회 대구시지부 회원들이 14일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2층 강당에서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원안 유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공원 광장과 누각 명칭을 놓고 구미시와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후손 등이 대립하는 가운데 광복회가 ‘왕산광장ㆍ왕산루 원안 유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왕산 선생의 장손 허경성(93) 옹과 며느리 이창숙(88) 여사, 광복회 대구시지부 회원 등 30여명은 14일 대구 동구 효목동 광복회 대구시지부 2층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산동광장을 왕산광장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수문(59)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왕산 광장 조성으로 국민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나라사랑과 민족혼을 심어주고 싶다”며 “3ㆍ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에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는 안될 말”이라고 말했다. 또 “독립운동가를 공공시설이나 도로명에 붙여 널리 알리는 것은 후손들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도 적극 권장돼야 한다”며 “왕산광장과 왕산루는 당초 원안대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지부장은 또 기타 장소에서 왕산광장 별도 조성과 현 산동광장의 장진홍 광장 명명 등 일부 단체의 새 제안에 대해서도 논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전임 시장 때 기존 안에 확정되었던 만큼 또 다시 번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에 이런 논란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왕산 선생의 장선 허경성(왼쪽) 옹과 며느리 이창숙(가운데) 여사, 노수문(오른쪽)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이 14일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2층 강당에서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변경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왕산 선생의 장선 허경성(왼쪽) 옹과 며느리 이창숙(가운데) 여사, 노수문(오른쪽)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이 14일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2층 강당에서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변경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허 옹도 이날 ‘장세용 구미시장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현 물빛공원은 전임 시장 때 주민공청회 등을 거쳐 왕산광장과 왕산루로 확정했고, 왕산가문 독립운동가 14명의 동상도 세우기로 한 것”이라며 “산동주민협의회와 인동장씨 대종회가 주장하는 ‘태생지 중심 기념사업집적화’는 근거 없는 논리로, 임은동 왕산기념관은 협소하고 방문객이 적어 동상설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확장단지에 ‘산동물빛공원’을 조성하면서 남유진 시장 당시 공원 내 광장은 왕산광장, 누각은 왕산루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장세용 시장 취임 후 구미시는 명칭변경을 추진했다. 수공은 올해 초 공원 준공과 함께 구미시에 관리권을 넘겼다. 시는 왕산광장은 산동광장으로 변경하고 왕산루는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다.

허 옹과 이 여사는 지난달 20일 구미시청 앞에서 명칭 변경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고 장 시장과면담하는 과정에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언성을 높였다며 논란이 일자 장 시장은 이틀 뒤 허 옹의 대구 북구 침산동 자택을 찾아가 사과했다.

왕산 허위 선생은 1855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현재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13도 창의군 참모장을 맡아 1908년 일본 통감부 공격을 위해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했다. 항일의병활동 중 일본군에 붙잡혀 1908년 9월27일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4명이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왕산 가문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항일 가문이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1층 전시실에 왕산 허위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행적에 대해 전시물이 전시돼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광복회 대구지부 1층 전시실에 왕산 허위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행적에 대해 전시물이 전시돼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