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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때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검찰 간부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스타탄생의 순간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두고 2013년 국회 국정감사 때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했던 말이다. 멋지다, 대단하다, 박수가 쏟아졌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트위터에다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저 말이, 조 장관 마음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개인적으론 저 말을 듣는 순간, 멋지다기보다는 좀 섬뜩했다. 참여정부 초기 대선자금 수사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이 떠올라서다. ‘한나라당=차떼기당’ 도식을 탄생시킨 그 수사 때, 이젠 사라진 대검 중수부도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서초동 청사엔 꽃다발이 쏟아졌고, ‘국민검사’ 호칭도 나왔다. 어찌나 환호성이 컸던지 “경제에 부담된다”는 뻔한 레퍼토리조차 끼어들지 못했다.

당연히 ‘소감’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당시 안 중수부장은 특유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몸짓으로 “국록을 받는 일개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직분에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란 말만 반복했다.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큰 수사를 했고, 국민 성원까지 이끌어냈는데, 심지어 겸손하기까지 하다 했다.

“곰 잡으라고 총 하나 들려 산에 보냈더니, 곰 잡기 전에 늑대와 여우부터 잡길래, 그래 늑대 여우도 곰처럼 나쁜 놈이긴 하지, 했더니 곰 잡고 내려오는 길에 뒷골목 쥐새끼 몇 마리까지 다 잡더라”는 게 ‘검사 안대희’에 대한 서초동 평가였다. ‘너무 잘 드는 칼’이란 이유로 끊임없이 견제 받았다던 ‘검사 안대희’에게 ‘중수부장’은 최고의 시간이었으리라.

참여정부 출범 이후인 2004년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거기에 그치면 검찰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에서 냉동탑차에다 수십억원을 퍼다 나른 일이 들통난 야당과 보수언론은 ‘한나라당 받은 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책임지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측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으로 만들었다. 검찰개혁이 거론되자 ‘10분의 1 넘겼다고 이러느냐’ 되받아쳤다.

차이가 있다면, 참여정부는 안 중수부장을 대법관으로 보냈다.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을 시키지 않기 위한 ‘좌천성 영전이냐, 영전성 좌천이냐’는 농담이 나돌았다. 그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법농단 수사를 했던 윤석열에게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 자리까지 줬다. 대통령이 나서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도 거론했다. 인사를 통해 특수통 검사를 약진시켰다.

공무원의 직분에 충실한 검찰이 차떼기 뒤 10분의 1에 도전했듯,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찰이 국정농단 사법농단 수사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는, 어쩌면 너무 뻔한 것 아니었을까. 다른 모든 걸 다 떠나 지금 조 장관 수사를 두고 ‘진짜 그럴 줄 몰랐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다 ‘김학의 카드’까지 등장했다. 검찰개혁과 내년 총선이 중요하다 한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검찰개혁도 중요하다. 조국 장관 수사만 해도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숱한 비판이 이미 나왔다. 특별수사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 장관 사퇴에도 불구하고 이번 검찰 수사의 의미는 일정 정도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의 간극을 크게 만들어 정치적 재미를 보려는 사람들 빼곤,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한 이들 또한 검찰개혁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김학의 카드를 꺼내 윤석열을 채동욱처럼 비치게 만드는 건, 내 이럴 줄 알았다며 환호하는 건,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정부를 박근혜 정부 수준으로 만드는 일이다. 꼼수 쓰려 하지 마라. 차라리 조롱당하고 얻어터지더라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라. 그게 정공법이다. 촛불정부가 나중엔 촛불마저 잃을까 두렵다.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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