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체납자는 병원도 못 가

주택을 112채 보유한 법인과 21채 보유한 재력가가 건강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집값이 31억원에 이르는 고가 주택의 소유자가 건강보험료 4,700만원을 연체하는 등 부유층의 건강보험료 체납이 도마에 올랐다. 반면 매달 1만원 미만의 건강보험료를 12개월 이상 내지 못한 생계형 장기체납자는 20%가 지난해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건강보험 수혜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8월 22일 제17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의 2020년 건강보험료율 결정을 앞두고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주최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 촉구 및 보험료 인상 반대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부위원장인 유재길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14일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연체한 세대 가운데 보유한 주택의 가격이 10억원을 넘는 경우는 모두 252세대였고 체납액은 총 9억7,100만원이었다.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경우는 112채(법인)를 보유했고 3주택 이상 소유자도 108명(개인 87명ㆍ법인 21곳)에 달했다.

자산가뿐만 아니라 고소득자들의 보험료 체납도 적발됐다. 같은 당 인재근 의원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고소득전문직으로 분류해 특별 관리하는 의사와 변호사, 세무사 등 19개 직종의 보험료 체납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만 443세대가 총 9억9,800만원을 체납했다. 체납건수는 2016년 346건에서 해마다 늘고 있다. 인재근 의원은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체납을 일삼는 이들의 편법행위가 계속되며 건강보험 재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총액 자체는 적지만 건강보험료 징수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보험료를 낼 여력이 있으면서도 연체하는 부유층이 늘어나는 사이, 돈이 없어서 매달 1만원도 안 되는 보험료조차 내지 못하는 생계형 장기체납세대는 지난해 7만가구(8만9,18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1만원 이하 보험료를 12개월 넘게 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지만 의료급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6개월 이상 연체 시 가입자가 보험자격을 상실해 건보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의료비가 올라가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병원을 아예 찾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들 7만가구 가운데 병원을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이 1만8,452명(20.7%)에 달했다.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6%)와 의료급여 수급자(3%)의 병원 미이용자 비율을 훌찍 넘는 수치다. 병원을 방문한 환자의 1인당 연평균 이용횟수를 따져도 생계형 장기체납세대(13.5회)가 건강보험 전체 가입자(21회) 의료급여 수급자(55회)에 뒤졌다. 김상희 의원은 “생계형 장기체납자는 연체금액과 의료비에 대한 부담으로 진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병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보험료 납부능력이 전혀 없는 1만원 이하 장기체납세대는 의료급여로 전환하여 의료이용의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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