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터키 국경과 맞댄 쿠르드족의 요충지 시리아 라스 알아인에서 터키군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라스 알아인=EPA 연합뉴스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침공 사태가 염려하던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터키군 공격으로 쿠르드 무장세력이 통제권을 상실할 경우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포로들이 재무장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원인 제공자인 미국마저 확실히 발을 빼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기는커녕 테러리즘 부활 우려만 커지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간)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를 인용, “여성과 어린이 등 IS와 연계된 가족 785명이 터키 측 포격을 틈타 시리아 북부 아인이사의 억류자 캠프를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 당국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쿠르드인민수비대(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은 2014년부터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미군을 대신해 IS 격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 때 잡은 포로와 가족들을 수용하는 캠프를 운영해 왔다. 영국 BBC방송 자료를 보면 현재 SDF 수용소 7곳에 갇힌 IS 조직원은 1만2,000여명, 가족까지 합치면 10만명을 훌쩍 넘는다. 북부 하사케 지방의 알홀 캠프에만 6만8,600명이 수용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터키가 테러단체로 규정한 YPG를 최우선 섬멸 대상으로 삼으면서 감시에서 벗어난 IS 포로들이 구금 시설을 탈출할 가능성이 일찌감치 제기돼 왔다. SDF 측은 실제 이날 성명에서 “수용소 방어는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다”고 밝혔다.

터키군이 쿠르드 거점을 파죽지세로 접수하면서 IS 세력의 활동 재개 전망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터키군과 친터키 민병대는 전날 YPG가 장악한 라스 알아인에 이어 이날 북동부 도시 술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스 알아인은 YPG가 수년간 IS의 끈질긴 공세에도 끝까지 지켜낸 핵심 군사 요충지다. 엄청난 화력을 동원한 터키의 파상 공격 탓에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SOHR은 “터키군 작전으로 지금까지 쿠르드족 마을 27곳을 빼앗겼으며 최소 38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공습을 피해 거주지를 떠난 쿠르드족 피란민도 13만명에 달하고, 앞으로 최대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유엔은 예상했다.

국제사회는 여러 수단을 동원해 터키를 압박하는 중이지만 미국의 미온적 태도로 효과는 미지수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CBS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시리아 북부에서 1,000명 정도의 미군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고 그는 신중하게 군대 철수를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철군이 시작된 셈이다. 트럼프도 ‘고립주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터키 국경에서 일어나는 격한 전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매우 영리한 일”이라며 시리아 철군 결정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거듭 강조했다. 11일 터키에 고강도 경제제재 가능성을 거론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양측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터키 정부 역시 요지부동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일 대테러 회의를 주재하면서 “누가 뭐라 하든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확전 의지를 다졌다. 터키의 목표는 분명하다. 에르도안은 “테러리스트들을 우리 국경에서 32㎞ 떨어진 곳 밖으로 몰아낼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고 단언했다. 32㎞는 터키가 올해 1월 시리아 북동부 국경 480㎞를 따라 설치 하려던 ‘안전지대’ 폭과 일치한다. 터키는 이곳에 시리아 난민 100만명을 이주시켜 완충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서방은 YPG와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는 쿠르드 거점 점령안으로 본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에르도안의 목적은 쿠르드 민간인 보호가 아닌, 이들의 터키 유입을 막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은 유럽의 적대적 반응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미국이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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