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터키 국경과 맞댄 쿠르드족의 요충지 시리아 라스 알아인에서 터키군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라스 알아인=EPA 연합뉴스

쿠르드족 축출을 위해 국경을 넘어 시리아 북동부를 침공한 터키군이 파죽지세로 쿠르드 주요 거점을 점령하고 있다. 미국이 뒤늦게 경제제재 엄포를 놓는 등 국제사회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멈추지 않겠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나 홀로 행보’에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터키 국방부는 12일(현지시간) 개전 나흘째를 맞아 트위터에 “유프라테스강 동쪽에 위치한 라스 알아인시의 통제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라스 알아인은 쿠르드민병대(YPG)가 수년간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끈질긴 공세에도 끝까지 지켜낸 핵심 군사 요충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철군 선언 전까지 미군도 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과 이곳에 주둔하며 방어를 폈다.

‘평화의 샘’ 작전으로 명명된 터키군의 파상 공세가 이어지면서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SOHR은 “터키군 작전으로 지금까지 쿠르드족 마을 27곳을 빼앗겼고, 최소 38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공습을 피해 거주지를 떠난 쿠르드족 이재민도 10만명을 넘어섰다고 유엔은 집계했다. 반면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쿠르드노동자당(PKK)과 (PKK 지원을 받는) YPG 테러리스트 459명을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터키를 압박하는 중이다. 우선 섣부른 철군 발표로 터키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미국이 수습책을 내놨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전날 “터키가 군사작전 과정에서 인종ㆍ종교적 소수집단을 겨냥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연루된 개인 및 기관을 제재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민간인 피해가 커질 경우 고강도 경제제재 방침을 경고한 것이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같은 날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과 통화하고 터키의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했다.

전날 네덜란드ㆍ노르웨이에 이어 이날 프랑스와 독일도 군사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터키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아랍연맹 역시 외무장관 성명을 통해 “외교ㆍ경제ㆍ투자ㆍ문화 대응책을 검토하겠다”며 보복을 시사했다.

그러나 터키는 미동조차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대테러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좌우에서 협박이 오고 있으나 누가 뭐라 하든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확전 의지를 다졌다. 터키의 목표는 분명하다. 에르도안은 “테러리스트들을 우리 국경에서 32㎞ 떨어진 곳 밖으로 몰아낼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고 단언했다. 32㎞는 터키가 올해 1월 시리아 북동부 국경 480㎞를 따라 설치 하려던 ‘안전지대’ 폭과 일치한다. 터키는 이곳에 시리아 난민 100만명을 이주시켜 완충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서방은 사실상 쿠르드 거점 점령안으로 YPG와 PKK의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에르도안의 목적은 쿠르드 민간인 보호가 아닌, 이들의 터키 유입을 막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노림수를 감안하면 터키의 밀어내기식 물량 공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다. 4일간 공습을 퍼붓고도 점령 도시들 대부분이 국경 10㎞ 반경에 있어 나머지 지역을 모두 통제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게 자명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은 유럽의 적대적 반응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미국이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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