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노조가 해고 수납원들의 본사 점거 농성 해제를 요구하며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벽에 건 대형 현수막. 김천=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행정부 2기 노동정책 설계자로 꼽히는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의 저서 ‘균열일터’(2014)는 20세기 대부분 기간 단일한 고용주와 노동자의 계약으로 이뤄지던 고용관계가 20세기 후반부터 재편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수익 증대와 비용 절감 압력을 받은 기업들은 핵심역량에만 집중하면서 기타 영역은 하청이나 프랜차이즈 같은 방식으로 고용-피고용을 독립적 계약관계로 재편한다. 이런 식으로 근로계약관계가 분절되고 복잡해지면서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님’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현상을 저자는 ‘균열일터’(fissured workplac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책은 일터가 쪼개지고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 교섭능력이 약해지면서 임금ㆍ노동시간ㆍ산업재해 보상 등 근로조건이 크게 나빠진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묘파한다.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 구조물에서 97일간의 고공농성과 30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본사 점거농성 등 극단적 노사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수납원 사태는 ‘한국판 균열일터’의 실상을 보여주는 지옥도다. 10여년 전만해도 통행권의 발권ㆍ회수, 미납차량 적발, 통행료 수납 등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하던 도로공사의 수납원 6,500여명은 지금 모래알처럼 쪼개져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추구에 따른 공공부문 외주화 정책-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소송-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 등 정권의 춤추는 인력 정책에 따라 고용관계는 요동쳤다. 그 사이 이해관계가 달라진 노동자들 간에도 균열이 생겼다. 도로공사는 큰 노동조합만 해도 정규직 노조, 자회사 노조,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해고자들이 주축인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 민주노총 노조 등 4개나 된다. 지난 8월 해고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 전만 해도 봉합돼 있던 개별 노조의 이해관계는 판결 이후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정규직 노조. 해고자 1,500명 전원의 정규직 고용을 주장하는 본사 점거농성이 시작되자 지난달 이들은‘농성은 이제 그만!’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면서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가장 많은 수납원(약 5,000명)이 속한 자회사 노조원들의 심경도 복잡하다. 이들은 해고자들의 직접고용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해고자들의 수납원 복직은 결사 반대한다. 지난주 1심에서 승소한 해고자 조합원들까지 직접고용하겠다는 민주당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의 입장도 곤혹스럽다. 여전히 농성 중인 해고자들에게, 대오(隊伍)에서 이탈한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해고수납원들의 직접고용이 대법원 판결 취지라며 농성을 풀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 노조는 도로공사와 톨게이트 노조의 합의를 야합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100% 만족할 수 있는 합의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동자들을 갈기갈기 분열시켜 놓은 도로공사 사태가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외주화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나 외주화의 남용은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게 그 첫번째다. 두번째 시사점은 갈등해결을 위해 사법부 판단과 같은 외부 권위에 기대는 일은 갈등 해소의 사회적 비용을 크게 한다는 점이다. 노사의 불신에 기인한 자율 교섭의 실패는 법원, 정치권이라는 외부 권위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는 도로공사 사태처럼 노동자 내부의 균열을 오히려 가속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문제는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을 촉발하는 불씨인만큼 당국이 분명히 기준을 설정해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간접고용의 적법한 기준마련을 위해 축적된 판례와 바뀐 노동환경을 반영, 고용노동부가 12년 만에 개정 작업 중인‘근로자 파견에 관한 지침’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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