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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2시간’ 넘은 킵초게 “달리기에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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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2시간’ 넘은 킵초게 “달리기에 자유가 있다”

입력
2019.10.13 16:14
수정
2019.10.13 18:4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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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 59분 40초에 주파한 뒤 전광판을 가리키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 59분 40초에 주파한 뒤 전광판을 가리키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마치 달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같았다.”

엘리우드 킵초게(35ㆍ케냐)는 불가능으로만 여겨졌던 마라톤의 2시간 벽을 돌파한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록 비공인 기록이었지만, 킵초게가 일으킨 파장은 컸다. 1896년 1회 그리스 올림픽 때만 해도 마라톤은 완주만으로도 박수를 받아야 하는 종목이었다. 참가 선수 25명 중 완주에 성공한 선수는 단 9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킵초게로 인해 이제 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종목이 아닌, 한계를 뛰어 넘어 ‘도전’하는 경기로 재탄생했다.

킵초게는 12일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인류 사상 최초로 마라톤 풀 코스(42.195km)를 1시간59분40초에 돌파했다. 인간이 42.195km를 2시간 내에 주파한 건 역사상 최초다.

킵초게의 ‘서브2’는 인간의 위대한 도전 의지와 기술 혁신이 만든 합작품이다. 킵초게는 본래 5,000m가 주 종목이었지만 2013년 마라톤으로 종목을 전환하며 ‘서브2’를 이룰 유일한 후보로 꼽혀왔다. 함부르크에서 2시간5분30초로 처음 정상에 오른 뒤 이후 11개 대회에서 10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베를린 마라톤에선 2시간01분39초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는데, 이전 세계기록을 78초나 앞당긴 것은 최근 50년간 최대폭의 단축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케냐의 ‘국민 영웅’으로 불리며 이미 돈도, 명예도 얻을 만큼 얻은 그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달리기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실제로 킵초게는 달리는 2시간 이외의 22시간도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오로지 달리기에만 인생의 궤적이 맞춰져 있다. 1년 중 300일을 가족과 떨어진 채 케냐 고산지대의 작은 마을 켑타가트에서 보낼 정도다. 마라톤 여제 폴라 레드클리프(46)는 킵초게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누군가 그의 삶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만약 앞으로 2시간 안으로 뛰는 선수가 나온다면 그것은 당연히 킵초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는 평소 스스로를 “변화와 기술, 혁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만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깨어있는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2017년 ‘나이키 브레이킹2’에서는 F1 트랙 위에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2시간 벽에 도전했던 킵초게는 이번에도 오르막이 전혀 없는 평탄한 코스에, 직선 주로가 90%에 이르는 오스트리아 빈을 선택했다. 경기 시간도 온도와 습도를 고려해 오전 8시15분으로 결정됐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7명의 페이스 메이커와 함께 달렸고, 총 41명의 페이스메이커가 4km마다 돌아가며 킵초게 주위를 지켰다. 자전거를 탄 보조 요원들이 그가 필요할 때마다 음료를 전달했고, 킵초게 앞의 전기차는 형광색 레이저를 쏘며 페이스 조절을 도왔다.

케냐 시민들이 12일 케냐 엘도레의 한 광장에서 엘리우드 킵초게의 마라톤 2시간 돌파를 생중계로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엘도레=AP 연합뉴스
케냐 시민들이 12일 케냐 엘도레의 한 광장에서 엘리우드 킵초게의 마라톤 2시간 돌파를 생중계로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엘도레=AP 연합뉴스

2시간의 벽을 넘기 위해 스폰서들도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00년대 초부터 킵초게와 동행해온 나이키는 오로지 그의 기록 단축에만 초점을 맞춰 신발을 제작했다. 이날 그가 신은 ‘나이키 넥스트%’ 프로토타입은 밑창이 커브로 돼있어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는 데다, 킵초게의 발 사이즈에 딱 맞춰져 앞뒤로 긴 형태다. 신발의 어퍼가 땀에 젖는다는 그의 피드백을 반영해 방수소재를 사용했다. 로드 사이클 명문 구단 ‘팀 이네오스’를 후원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영국 글로벌화학업체 이네오스는 이번 이벤트에만 150만파운드(약 22억원)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한국일보]킵초게 기록 변천사_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킵초게 기록 변천사_신동준 기자

영국 주간지 가디언은 “킵초게의 기록은 국제육상연맹(IAAF)의 공인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후세에 누군가 ‘마라톤 2시간의 벽은 누가 처음 넘었나’라고 묻는다면, 모두가 ‘킵초게’라고 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킵초게는 “은퇴 뒤의 내 꿈은 달리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며 “달리면 세상이 건강하고 부유하고 평화롭고 즐거워진다. 달리기에 자유가 있다. 그것이 지구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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