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억제력’‘되돌릴 수 없는…’ 등 표현으로 노골적 흉내내기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 미국 협상팀과 실무협상을 벌인 뒤 북한 대사관 앞에서 결렬 성명을 읽고 있는 김명길(가운데)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스톡홀름=박지연 기자

대미 비핵화 협상 재개 뒤 북한의 미국 흉내내기가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의 언행을 반복, 고스란히 돌려주는 식이다. 기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피력으로 보인다.

친북 매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2일 기사에서, 스톡홀름 대미 실무협상 직전인 2일 북한이 시험 발사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두고 북한이 “또 하나의 막강한 핵 전쟁 억제력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핵 전쟁 억제력’은 아직 북한 공식 매체에는 도입되지 않은 표현인데 한미 연합 군사연습의 명분이 바로 ‘핵 전쟁 억제’다. 상대방의 핵 보유 탓에 핵 무장이 불가피하다는 미국의 논리를 모방한 것이다.

스톡홀름 협상 결렬 직후인 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처음 사용된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는 표현도 유사한 경우다. 영문 표현이 ‘CIWH’(Complete and Irreversible Withdrawal of the Hostile policy)로 압축될 수 있는 이 어구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 의해 고안된 북핵 문제 해결 원칙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ㆍ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와 모양새가 흡사하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10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최근 진행된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 시험 발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우리의 자위권에 속하는 정당한 조치만을 걸고 든다”고 항의한 건, 미국의 ICBM 시험이 북한의 SLBM 시험과 같은 날 이뤄졌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의 스톡홀름 협상 결렬 선언은 올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 일과 판박이다.

최근 거침없는 북한의 미국 따라 하기는 페미니즘 진영의 ‘미러링’(되받아치기) 전략과 의도가 비슷한 듯하다. 상대방 주장의 편협성과 일방성을 드러내며 대등한 위치를 확보하고 협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13일 “극한까지 갈등을 밀어붙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북한의 오랜 방식인 만큼 최근 북한 행태는 ‘블러핑’(허풍ㆍ엄포)으로 볼 여지가 크지만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미 당국자가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오해할 소지도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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