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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담긴 ‘개굴개굴 개구리’는 우리집 금지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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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담긴 ‘개굴개굴 개구리’는 우리집 금지곡이죠”

입력
2019.10.14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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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낸 박한아씨 

박한아씨는 “기회가 되면 동화책을 쓰고 싶다. ‘여자답게, 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를 외치는 다양한 종류의 어린이가 등장하는, 아이들이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윤소정 인턴기자
박한아씨는 “기회가 되면 동화책을 쓰고 싶다. ‘여자답게, 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를 외치는 다양한 종류의 어린이가 등장하는, 아이들이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윤소정 인턴기자

여대를 나왔지만 페미니즘은 한물간 유행어인 줄 알았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성차별주의는 박제된 말인 줄 알았다. 임신 9개월 차인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마주한 후 ‘공포’가 엄습했다. “이토록 무례한 세상에서 내 자식이 멀쩡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는 프리랜서 작가 박한아(33)씨가 3년여간의 육아체험기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21세기북스 발행)를 쓰게 된 계기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박씨는 “성차별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저는) 페미니스트”라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뱃속의) 아이가 어떤 남자로 성장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생님 배냇저고리는 무슨 색으로 준비할까요? 파란색이 나을까요?’ 배냇저고리는 대개 흰색이건만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 사람들은 이런 질문으로 태아의 성별을 묻곤 했다. 시대를 거치며 저런 말이 남아선호사상과 함께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던 박씨는 바당이(박씨 아들의 태명)를 낳고 기르며 ‘아들은 파란색, 딸은 분홍색’이란 공식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아이의 성별이 알려지는 순간부터 성별로 분류되고 재단됨을 체감했다. 박씨는 “아이 옷부터 다르다. 남자아이 옷에 공룡, 자동차가 그려져 있다면 여자아이 옷에는 꽃, 리본이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분법적 구분 없이 예쁘면 입히는 박씨의 육아스타일 덕분에 바당이는 옷차림만 봐서는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최근까지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을 지겹도록 들었다.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는 성별로 구분돼있어요. 남아용은 자동차, 여아용은 소꿉놀이 식으로. 어른은 이제 이렇게까지 불필요한 성별 구분을 하지 않는데, 아동용 제품은 아직도 자연스럽게 성별을 나눠 판매하죠.”

박한아씨는 최근 양육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딸, 아들 키우는 방법이 다르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박씨는 “태어나 줄곧 다른 선택지를 받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별에 따른 차이가 태생적인 건지, 사회화의 결과인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면서 “아이를 성별이란 이분법으로 재단하면 오히려 많은 잠재력,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윤소정 인턴기자
박한아씨는 최근 양육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딸, 아들 키우는 방법이 다르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박씨는 “태어나 줄곧 다른 선택지를 받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별에 따른 차이가 태생적인 건지, 사회화의 결과인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면서 “아이를 성별이란 이분법으로 재단하면 오히려 많은 잠재력,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윤소정 인턴기자

아이들이 통과의례로 듣는 전래동화, 동요는 극단의 여성혐오를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약탈혼(붙잡아온 여자를 아내로 삼는 혼인형태)을 미화한 ‘선녀와 나무꾼’, ‘춘향전’으로 대표되는 각종 열녀신화를 비롯해 무심코 부르는 동요 ‘개굴개굴 개구리’에도 성차별적 요소가 담겨있다. 박씨는 “별 생각 없이 따라 부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가사 속 노래 부르는 순서(‘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가 지금은 폐지된, 호주제의 호주 승계 순서”라면서 “결국 우리 집 금지곡 1호가 됐다”고 덧붙였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제품, 서비스, 인식에 유독 성별 구분, 성차별, 여성혐오를 거리낌 없이 담는 이유는 아이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아이를 만지거나, 허락 없이 사진 찍는 일을 많이 겪었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게 아니라 미성숙한 존재, 그래서 어른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도 성별로 차별 대우를 받는다. 박씨는 “양육 잘 하는 엄마는 ‘그냥 엄마’지만, 양육 잘하는 아빠는 ‘좋은 아빠’로 불린다”며 “아이 출입을 막는 ‘노키즈 존’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이가 사회성을 키우고 예의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세계에서 자란 아이가, 사람을 성별로 구분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성을 ‘이성’이 아닌 ‘인격’으로 대하는 게 가능할까. 고민 끝에 박씨는 직접 나섰다. 한 달에 한 번씩 여성 작가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북클럽을 시작했고, 사는 지역 근처에서 하는 ‘스쿨미투’ 집회에 참석했다. ‘트럭 기사는 아줌마 아니야, 아저씨야’라고 울부짖는 아들을 보고, 당장 자동차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했다. 아이가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 없는 세상에 자라길 바라는 저자는 관련 양육책을 찾아봤고,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책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육아일기를 책으로 내기로 했다.

이미 성 고정관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박씨는 딱 한 가지 기준만 생각하고 아이를 대해달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한 가지만 생각하세요. 어른한테도 할 수 있는 행동인가. 귀엽다고 볼 만지고, 뽀뽀해달라고 떼쓰고, 허락 없이 사진 찍는 행동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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