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난달 20일 개막한 럭비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회인 데다 주최국인 일본팀이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아일랜드를 꺾는 등 4연승으로 사상 첫 8강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선전은 국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분, 외국 국적인 분들이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하나의 팀으로 싸운 성과가 나오고 있다”라며 ‘다양성’을 강조했다.
럭비 월드컵에 출전한 일본 대표팀 31명 중 외국 출신 선수는 15명. 이 가운데 일본에 귀화한 선수가 7명, 귀화하지 않은 선수가 8명이다. 출신 지역은 호주, 뉴질랜드, 통가, 사모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등 다양하다. 일본팀 주장은 뉴질랜드 출신으로 15세 때 일본으로 럭비 유학을 온 뒤 2013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리치 마이켈(30) 선수다. 최근 한일관계와 맞물려 한국인 구지원(25) 선수의 활약도 ‘한일 양국의 가교’로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구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뉴질랜드로 럭비 유학을 갔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현재까지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양국 국민들로부터 응원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럭비가 국적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대신 △출생지가 해당국 △부모ㆍ조부모 중 1명이 해당국 출신 △3년 연속 또는 통산 10년 이상 해당국에 거주 중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해당국 대표팀에서 뛸 수 있다. 외국인 선수의 상한선도 없다. 일본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
럭비 월드컵에서 국적이나 출신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승리를 향해 땀을 흘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볼 수 있는 우수한 ‘외국인 용병’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에 일본의 럭비 대표팀은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으로 외국인들에게 점차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이상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에 눈을 돌리면 씁쓸해진다. 외국 출신 노동자들을 일손 부족 해결 수단으로 여기거나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 관행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올 4월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입관법)을 개정, 5년간 34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나 열악한 근무환경에는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로 입국한 베트남인 6명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제염 작업에 투입됐다가 피폭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일본 법원은 3일 조선학교를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문제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의 시정 권고에도 요지부동이다. 아울러 이달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유아교육ㆍ보육 무상화를 실시하면서 조선학교 부설 유치원을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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