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저는 1년전 이혼하고 홀로 네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이혼 후에 양육비를 받지 못해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고 있어요. 남편과는 경제적인 이유와 육아 문제 등으로 갈라섰습니다. 아이 아빠는 저와 결혼하기 전에 홀로 아이 둘을 키우던 돌싱남이었습니다.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저 역시 친정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에 성급히 결혼을 택했어요. 남편은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제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결혼 후에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지 않고, 제 아이가 생기면서 저는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어요. 낮에는 남편 대신 아이들을 돌보고, 밤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남편이 하는 치킨집에 가서 일했어요. 결혼 전에 몰랐던 남편의 빚도 많았습니다.
제 마음과 달리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저는 불같이 화를 내고 종종 때리기도 했어요. 하루는 큰 아이가 장염에 걸려 식탁에 토했는데, 뒷감당이 싫어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며칠 후에 제가 낳은 딸이 장염으로 토했는데, 그 순간에는 화가 나기보다 너무 걱정되고, 제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무리 사랑으로 키운다 해도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는 남의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제가 한심스러웠어요.
이혼 후에 제가 낳은 딸만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연락도 잘 하지 않았던 친정 부모와도 다시 연락했어요. 혼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리 싫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어서요. 두 분은 제가 스물 두 살 때 이혼했습니다. 아빠는 술을 자주 마셨고, 그런 날이면 엄마와 늘 다퉜습니다. 제가 말썽을 부리면 아빠는 저를 각목으로 때렸고, 기분에 따라 매질의 강도도 달랐습니다. 술을 마시고 엄마와 저를 괴롭히는 아빠가 너무 싫었어요.
엄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어요. 원체 성격이 무뚝뚝해 제가 어떤 일을 자랑해도, 심지어 장학금을 받아도 단 한번도 칭찬을 해주지 않았어요. 아빠 때문인지 제가 하는 말과 행동에 무관심과 짜증만 내셨어요. 엄마가 일해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집에 종종 있었지만, 하루 종일 엄마는 전화 한 통도 안 했습니다. 심지어 도둑이 들었을 때도 저 혼자 겁에 질려 있었는데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엄마가 먹을 것을 해 놓지 않아 초등학교 때는 혼자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끓여 먹었고, 집에 있던 김치찌개를 친구들과 나눠먹었다는 이유로 크게 혼나기도 했어요. 성인이 된 후에는 제 스스로 학교를 다니고, 돈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빠엄마와는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엄마나 아빠와 연락을 종종 하는 게 힘듭니다. 아이에게도 점점 화를 많이 내고, 소리를 지르고,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아이를 툭툭 때리기도 합니다. 아이가 물을 쏟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저를 힘들게 하는 일이 생기면 설명하기보다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다. 한번은 아이가 대변을 볼 때가 돼서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실수를 한 아이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혼을 냈습니다. 아이에게 연습할 기회를 주고 설명해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순간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어요. 이성을 찾으면 그제서야 사과하고, 제 기분을 설명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또 괴로워집니다. 제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김희진(가명ㆍ32세ㆍ회사원)
희진씨, 홀로 아이를 잘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요. 팍팍한 삶에 고달파하는 당신이 매우 가엾습니다. 옆에 있다면 당신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고 싶어요. 그런 상황에도 아이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데서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아이들은 왜 말썽을 피울까요? 우리가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몇 번을 말하니’ ‘하지 말랬는데 왜 또 하니’라는 말을 사실 굉장히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기 때문인데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살아있기 때문이에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변화하는 살아있는 삶이 없다는 걸 말해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다음 단계로의 성장과 발달을 의미하고, 그 과정에서 주어진 발달과제를 수행하는 거예요. 성장과 발달을 하는 과정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희진씨를 비롯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꼭 알아야 해요.
희진씨도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원해요. 예컨대 장염에 걸리면 아이가 어른처럼 아파도 좀 참고, 약을 먹고, 구토가 나오면 얼른 화장실에 가서 처리하고 그러기를 원하지요. 아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외부자극을 처리해야 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고 다양한 사람과 상호작용을 해야 해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커 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칭찬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아이들이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이해하란 얘기에요. 육아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힘겨워하는 것이지만 모든 부모들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진 않지요. 희진씨가 유난히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앞서 길게 설명했듯이 아이가 살아 있으니깐 당연히 문제를 일으키고, 아이가 이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은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생일에 좋은 선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해주고, 존댓말을 쓴다고 아이를 존중하는 게 아니에요. 존중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말해요. 아이가 어려서 미성숙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당연히 문제가 일어나고, 그 과정을 부모가 손을 잡아주고, 가르쳐주면서 겪어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이 존중의 개념이에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인 당신이 그것을 깨닫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야 아이를 존중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당신이 유난히 아이의 문제에 예민한 것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존중을 받아본 경험이 적어서일 거예요. 아버지는 난폭한 사람이었어요. 술을 먹거나, 마음이 안 좋으면 특히 만만한 가까운 상대에게 자신의 좋지 않은 마음을 그대로 표출했어요.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뭐라도 던지거나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어요.
어머니도 어린 당신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남편의 폭행과 생계 등의 이유로 딸을 살뜰하게 돌보거나 이해할 여력이 없었을 거예요. 어머니도 어찌 보면 결혼생활의 피해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자식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그러나 어머니는 철저하게 딸을 방치했어요. 어린 딸을 먹을 것 없이, 강도가 들어온 범죄 현장에 홀로 두었어요. 어린 희진씨는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요. 설사 나쁜 일을 했더라도 자식을 존중한다는 것은 “네가 몰라서 나쁜 짓을 한 거야, 네가 이게 나쁜 일이라는 걸 모르고 했다면, 엄마가 가르쳐줘야 해”라고 이끌어주는 걸 말해요. 존중이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식이 어려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혼내고 ‘때려서라도 너를 고쳐놔야겠다’라고 생각하지요. 고쳐주고 싶은 의도는 좋고 자녀를 사랑하겠지만 존중이 빠져있으면서 눈물 나게 야단을 치고 기억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때리며 공포감을 주지요. 결국 공포와 두려움으로 문제 행동을 멈출 수는 있으나 크고 중요한 것을 잃게 되기도 하겠지요. 부모는 대체인력이 없는 유일한 대상이니까요. 보호와 사랑을 해줘야 하는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세상에서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은 많은 부모가 자신이 조절하지 못한 화와 충동 때문에 자식을 때린다는 거지요.
희진씨, 부모로부터 존중 받은 기억이 없으면 자신이 부모가 됐을 때 자식을 존중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 아이와 마주했을 때는 뜻대로 되지가 않아요. 당신의 어린 딸이 문제를 일으키면 여전히 당신 안에는 억울하고 존중 받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툭 튀어나올 거예요. 아이와 엄마가 아니라 아이와 아이가 마주하는 상황이죠.
당신은 존중 받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태도를 고치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어요. 그렇게 애쓰고,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딸을 향한 고귀한 엄마의 사랑이에요. 그건 부정할 수 없어요.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분노하지 않으려면 그 순간 마음의 겨를과 여유가 필요해요. 그러려면 문제가 일어난 순간 당황하지 말아야 해요. 직면한 문제를 당장 처리하고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자연스런 성장과 발달이라고 되새겨봅시다. 아이의 성장을 돕고, 함께 해간다고 생각해야 당황스러움이 가라앉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어요.
물론 매우 어려워요.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아이에게 앞으로 단 한번도 화내지 마세요’가 아니라 깜깜한 밤에 별빛을 따라가듯이 빛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거예요. 아이를 존중하려고 애쓰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순간 15초의 아주 짧은 여유에요. 15초 멈추면 분노와 관련된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바뀌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당신에게 따뜻하지 않았던 부모와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머니에게 “힘들더라도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도와달라, 육아를 도와준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표현을 하세요. 딸이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면 만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만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효도할 필요도, 과하게 책임감을 느끼거나, 잘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 마음이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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