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5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행정법제 혁신 자문위원회 위촉식에서 김형연 법제처장이 자문위원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법제처 제공

미용사 면허증을 갓 딴 20대 청년은 하루라도 빨리 미용실을 열고 싶을 것이다. 기대에 부푼 마음에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서 미용실 영업신고서를 관청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관청의 수리가 있어야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해당 신고는 관청의 수리가 없이도 제대로 된 신고서만 접수되면 바로 영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법령을 집행하는 공무원은 법령에서 신고서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서 법령을 소극적으로 해석ㆍ적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민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의 원인이 공무원의 태도에도 있지만 법령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헌장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행정법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 행정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뜻깊은 행사를 열었다. 그 자리에 나온 어느 원로 법학자의 경험담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그 원로학자는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10여년간 법률자문을 해 왔는데, 상담을 위해 찾아온 일선 공무원들이 판례나 학설에 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만, 관련되는 법령 규정을 하나 찾아 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천 마디의 이론보다는 한 개의 명확한 조문(條文)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신고와 관련한 불명확성을 없애기 위해서는 ‘신고의 수리에 관한 사항이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형식적 요건을 갖춘 신고서가 행정청에 도달한 때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학설과 판례로 확립된 신뢰보호의 원칙,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등과 같은 행정에 관한 일반원칙이 법령에 직접 규정된다면, 일선 행정기관의 법치행정 확립은 물론이고 국민의 권리보호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제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관련 규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법령 중 92%에 해당하는 4,400여개의 법령이 행정법령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도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수많은 법령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법을 통한 대처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앞서 든 신고제와 같이 행정법령의 공통적인 사항은 하나의 법률에서 규정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행정법령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사항을 아우르는 일반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가칭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행정기본법’에서는 공직자의 ‘적극행정의 추진’을 명문화하고, 규제에 관한 법령 입안 시 국민과 기업의 편익을 우선 고려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행정의 원칙과 기준을 담은 행정작용의 기본 매뉴얼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국민 보호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4일에는 행정기본법 제정 추진의 중추적 역할을 할 ‘행정법제 혁신 추진단’이 출범하였다. 그 다음 날에는 학계, 법조계, 연구계, 행정부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로 이루어진 ‘행정법제 혁신 자문위원회’의 위촉식을 개최하여 ‘행정기본법’ 제정이라는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선진 외국의 법 이론과 법제를 답습하던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우리 실정에 맞는 행정법 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행정법 이론과 실무를 토대로 외국의 법제를 참고하여 새로운 법제를 마련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가 동원되어야 한다.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명품 ‘행정기본법’을 만들어 세계 법률시장에 표준으로 내놓을 날을 기대해 본다.

김형연 법제처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