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해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고(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39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부장 임효미)은 11일 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1980년 8월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이 서장에 대한 재심청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임 판사는 “이 서장의 당시 행위는 시기나 동기, 목적, 대상 등을 종합해 볼 때 범죄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서장은 1980년 5월 21일과 22일 시위대 120여명이 총기와 각목 등을 들고 경찰서에 들어왔음에도 무력 대응하지 않고 병력을 철수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하라는 안병하 전남도 경찰국장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총기의 방아쇠를 분리해 배에 실어 해경과 함께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
이후 목포로 되돌아와 치안 유지 활동을 재개했다. 이 서장은 당시 경찰서 내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구내방송을 하고, 무기를 반환하도록 시민 세력을 설득하는 등 시민군과의 충돌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90일 동안 구금ㆍ고문당한 뒤 군사재판에도 회부됐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직위 해제됐고 지시를 따른 다른 경찰 간부 11명도 의원 면직됐다. 이 서장은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돼 5년간 투병하다가 1985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서장의 유족들은 당시 군법회의의 유죄선고가 잘못됐다며, 지난해 7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무죄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7월 이 서장을 5ㆍ18민주유공자로 결정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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