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는 국무총리가 대표로 참석
이번에도 총리 가능성 높아… 책임 막중할 듯

청와대가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는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과 굳이 총리까지 갈 것도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 누리꾼(ta****)은 “반성 없는 일왕 즉위식에 굳이 대한민국 총리가 갈 필요는 없다. 주일대사관 사무관이 가서 향후에는 제대로 잘 하라고 격려하면 될 듯”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누가 가는 게 맞는 걸까요.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5월 즉위했지만 공식 기념행사는 오는 22일 열립니다. 일본은 이번 즉위식에 국교를 맺은 195개국 국가 원수와 대사 등 2,500여명을 초청했습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 찰스 영국 왕세자,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이 즉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각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해 축하사절의 급을 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전 즉위식에는 정부 대표로 누가 참석했을까요. 나루히토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 전 일왕의 1990년 11월 즉위식 당시 노태우 정부는 강영훈 총리를 사절단 대표로 보냈습니다. 미국에서는 댄 퀘일 부통령, 중국에선 우쉐첸 부총리가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그보다 전인 히로히토(재위 1926~1989) 일왕은 일제 강점기에 즉위했으니 우리나라 사절단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겠죠.
일본에서 일왕의 즉위식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아직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일본에서 거의 30년 만에 왕이 바뀌면서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平成)가 나루히토 일왕의 레이와(令和ㆍ5월 1일부터 적용)로 바뀔 정도로 새 시대가 열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최근 한 매체 인터뷰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축하 분위기를 계속 가져가면서 (자국민들에게) 좋게 보이는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현재 한국과의 관계는 최악이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는 대외관계를 좋게 하고 싶다는 속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의회에서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도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언급했습니다. 한국을 ‘중요한 이웃’이라고 언급한 것은 거의 2년 만이죠. 일본 공영방송인 NHK도 이 총리가 방문할 경우 아베 총리가 짧은 시간이긴 하나 회담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한일 대화 복원 가능성을 내비친 겁니다.
때문에 기자 시절 일본 특파원을 지냈고, 한일의원연맹 간사장ㆍ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던 ‘지일파’ 이 총리가 아베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상 간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막중한 임무를 안게 될 걸로 보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도 있습니다. “이 총리가 아베 총리를 만나 강제징용 문제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물밑 조율을 거치지 않고 만날 경우 의견 차만 확인할 위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왕 즉위식을 10일여 앞둔 상황에서 사절단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이 총리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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