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아사히 인터뷰서 日 언론 비판

“한국 대법원의 모든 강제징용 판결문을 읽어 보라.”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가 최근 한일 간 갈등 상황과 관련해 일본인들에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판결문부터 읽으라는 의견을 내놨다.
히라노는 11일 아사히(朝日)신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최근 혐한을 부추기는 일본 방송과 주간지 보도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했다”면서 “한국 문제에 대해 미디어가 무책임하게 반감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의 판결문도 읽지 않은 (방송의) 출연자에게는 코멘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우선은 모두 판결문을 읽어 봐야 한다. 판결문을 읽으면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인터뷰는 한일 관계의 악화 속에서 양국 간 관계 심화의 길을 찾는 아사히신문의 인터뷰 시리즈인 ‘이웃 사람’의 첫 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히라노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옹의 인터뷰를 읽었다며 “우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피해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기술을 습득할 것을 기대하고 모집에 응했다가 위험도가 높은 노동 환경에 놓여 임금도 받지 못했다”며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면 맞기도 했다. 비참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히라노는 이 인터뷰를 읽고 자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기능실습생 문제가 겹쳐졌다”고도 했다. 히타치(日立)제작소 등 일부 기업이 외국인 기능실습생들에게 기술교육 대신 장시간 단순노동만 시켜 당국의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일부 베트남 출신 기능실습생은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오염제거 현장에 투입됐다 피폭되기도 했다.
히라노는 “사람은 속성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간을 봐야 한다“며 “대립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범주화한다. 그러나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인생을 보면 공감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자이니치’(在日ㆍ재일동포를 일본에서 이르는 말) 3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어떤 남자’를 출간한 히라노 작가는 “학창시절 만난 자이니치를 생각하며, 그들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면서 자이니치에 대해 접근했다”고도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혹은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뺀 채 사람의 인생을 보고 공감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히라노 작가의 인터뷰와 함께 한일 갈등의 쟁점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도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 다마다 다이(玉田大) 고베(神戶)대 대학원 교수(국제법 전공)는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징용 판결 문제가 논의되더라도 일본이 불리하게 될 수 있다”며 “ICJ는 1990년대 이후 인권을 중시하고 있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ICJ 재판관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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