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본부 ‘대전 하트세이버’ 48명
“엄마가 이상해요, 갑자기 쓰러졌어요.”
지난 8월 31일 오전 7시 20분께 대전소방본부 상황실에 한 소년의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대전 서구에서 이수열(11·초등학생)군이 엄마(33)가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119에 신고한 것이다.
수열군과 형 성열(12)군은 엄마의 상태를 침착하게 설명하는 한편, 학교 등에서 배운 심폐소생술(CPR) 방법을 떠올려 엄마의 가슴과 다리를 마사지했다. 맥박과 의식이 없던 형제의 엄마는 구급대원이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맥박을 되찾았다. 나이 어린 형제의 침착한 신고와 대응이 엄마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때론 어른도 당황해 119에 전화한 뒤 울기만 하거나 주소도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초등학생들이 차분하게 대처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하게 구급대원을 집으로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문홍섭 선임은 평소 익힌 CPR 방법으로 심정지 환자를 직접 살렸다. 문 선임은 8월 29일 오후 5시 20분께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진 시민을 발견하고 곧바로 CPR을 실시했다. 자동제세동기(AED)까지 한 차례 작동시켰다. 장교 출신인 그는 군에서 방법을 익혔던 데다 바로 며칠 전 예비군 훈련에서도 CPR 교육을 받았다. 신고 6분여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까지 가세한 끝에 심정지 환자의 맥박이 돌아왔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다 퇴원한 이 환자는 현재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소방본부는 문 선임을 비롯해 구급대원 43명과 일반시민 5명 등 48명을 올해 3분기 대전시 ‘하트세이버’로 선정했다. 다음 달 하트세이버 인증서와 배지 등을 수여할 예정이다.
하트세이버(HEART SAVERㆍ심장을 구한 사람)는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로 죽음의 위험에 놓인 환자를 CPR 또는 AED 등을 활용해 소생시킨 사람을 말한다. 심정지 상태의 환자가 병원 도착 전에 심전도를 회복하고 병원 도착 전후로 의식을 회복하며, 병원 도착 후 72시간 이상 생존하는 경우 인증서를 수여한다.
대전동부소방서 이혜미 소방사는 지난 7월 신규임용자 관서실습을 마치고 근무 첫날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키기도 했다. 수원소방서에서 10년 차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김정아 소방위는 그동안 8차례나 CPR로 소중한 생명을 구해 올 2분기 이번 하트세이버 인증을 받았다.
CPR 교육은 일선 학교와 소방서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서 터득한 기술을 토대로 일상생활에서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 의외로 많다는 게 소방본부 측 설명이다.
일반인이 CPR을 이용해 소방관을 구한 사례도 있다. 인천환경공단 송도사업소 송도스포츠파크에 근무하는 윤현상씨와 권현주씨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 1월 송도스포츠파크 잠수풀에서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구조 훈련 중 사고로 수심 5미터 풀에 빠져 위기에 처한 119 구조대원을 CPR과 AED를 사용해 생명을 되찾았다.
지난달 12일 추석 연휴 순천의 한 공원에서 40대 남성의 생명을 CPR로 구한 김숙주(32ㆍ전주 삼촌초교 교사)는 “제 아이들도 옆에 있는 상황이라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며 “학교에서 매년 받는 심폐소생술 교육이 도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대전=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