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즌이다. 노벨상 탄생의 주역인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화학자인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인류에게 공헌을 가장 많이 한 사람들-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의 분야에서-에게 매년 상금 형태로 나누어 주라.”고 썼다. 노벨 경제학상은 1968년에 추가됐다.
올해는 특히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스웨덴의 16세 소녀 이야기 때문에 유독 노벨평화상에 관심이 쏠렸다. 그레타 툰베리는 약 1년 전인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 앞에서 환경보호를 외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과 1년이 조금 지난 2019년 9월, 약 400만명이 세계 곳곳에서 그레타 툰베리 시위에 동참했다. 그리고 9월 23일 유엔총회에서 그가 세계를 향한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장면이 세계 언론과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파됐다. 동시에 그레타 툰베리가 올해 노벨평화상의 유력 후보라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원래 노벨평화상 후보자는 알려지면 안되는 것이 원칙이다. 노벨평화상의 경우, 스웨덴에서 수여되는 다른 노벨상과 달리 노르웨이에서 수여식이 열린다.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후보자 명단을 50년간 비밀에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심각한 환경문제를 세계인들이 주목하게 한 이 어린 학생의 행동은 굉장히 놀랍고 엄청난 칭찬을 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위해 일을 한, 그럼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찰나와 같은 1년간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은 노벨상이 노벨상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결정 아닐까.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 때문에 올해 내내 부여잡았던 노벨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올해 초부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와 그들의 연구에 대한 글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학문에 대한 것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 대한 것들까지 모두 찾아서 읽게 됐다. 그리고서야 문득 다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5개 국가가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한다. 미국은 2018년까지 380명이 받았고, 영국이 132명으로 뒤를 잇는다. 간단한 통계에서조차 전통적으로 강국 위치를 차지해왔던 국가들이 노벨상을 주로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의 연구가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1968년부터 차근차근 뜯어 보게 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이 숫자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다른 해에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 간의 개인적인 인연들, 또는 일을 함께한 인연들이 연결돼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아니, 조금 과장하면 이 네트워크에 접근하기 힘든 상태에 있다면 노벨상을 받는 것이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왠지 억울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한번 더 과장을 보탠다면, 소위 잘나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아무래도 한 번 더 멘토링이라도 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확률이 높은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우선, 노벨상을 받고자 한다면 기초과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노하우를 쌓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과학자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매우 중요하겠다는 것이 첫번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노벨상 위원회도 이 서클을 벗어나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노벨상이 정말 인류 전체 삶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기를 기대한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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