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참사 6개월, 정신질환 응급현장은] <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기본 수단은 약물이다. 중증 정신질환인 조현병, 우울증부터 비교적 가벼운 정신질환인 불안장애에 이르기까지 약물은 환청 등 급성기 증상을 가라앉히는데 효과적이다. 약물을 복용하고 빠르면 며칠, 대개는 몇 주 이내에 증상이 잦아든다.

조현병을 이겨내고 정신질환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강사와 기고가로 활동 중인 박은정(24)씨는 “정신질환 치료는 약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약물은 증상을 가라앉힐 뿐,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거나 환자가 치료에 순응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동료지원가가 되면 더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된다고 강조한다.

조현병 환자이면서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되찾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은정씨가 16일 오전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정신질환 당사자 시민단체 '파도손'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치료에 성공해 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상태가 돼 다른 정신질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는 이들이 동료지원가다. 박씨는 어떤 심리상담가보다도 환자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환자가 치료를 받도록 설득하기가 쉽다고 설명한다. 박씨는 조현병 증상이 심했을 때 동료의 지원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털었놨다. 부모가 이혼한 박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청소년기에는 엄마의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자녀들과 차별을 받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자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미술치료를 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16일 오전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정신질환 당사자 시민단체 '파도손'에 놓여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병원에도 갔지만 진단명은 조울증에서 조현병으로 오락가락 바뀌었다. 결국 고등학교 자퇴한 뒤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했고,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박씨의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용기를 내 투병 사실을 밝혔지만 친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결국 연락을 끊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약물치료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한 때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박씨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운 것은 정신질환자 당사자단체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파도손)이 운영하는 위기쉼터와 동료지원가였다. 위기쉼터는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이 증상이 재발하면 머물며 동료지원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박씨는 지난해 증상이 재발해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지자 위기쉼터를 찾았다. 그 때 같은 조현병 환자인 파도손 이정하 대표가 입원을 권유했고, 결국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입원수속도 동료지원가가 대신 해줬다. 동료지원가는 질환에서 회복한 당사자라 대등한 관계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믿음이 갔다는게 박씨의 얘기다. “동료지원가는 무조건 입원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겠느냐’고 제 의사를 물어보고 여러 가지 대안을 찾아주죠.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고 제가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도록 북돋아 줬습니다.”

파도손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의원실과 협력해 전국 243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동료지원가를 채용하도록 한 정신건강보건법 개정안을 논의했고, 16일 법안이 발의됐다. 보건복지부도 동료지원가 양성 과정 개발에 착수했다. “동료지원가는 정신질환자가 권리를 찾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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