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으로 추정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상담하러 종종 병원을 찾아옵니다만 의사로서 해줄 것이 없습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자해ㆍ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로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당장 흉기라도 들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이상 환자가 거부하면 진료할 방법이 없죠.” (서울 송파구의 정신건강의학과 개업의 A씨)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한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새롭게 시행된 이후, 의료계는 의학적 필요성만으로도 입원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를 위해 비자의입원 요건을 완화하되, 혹시나 환자 인권에 반하는 강제적 입원이 이뤄질 가능성을 방지하고 입원 결정에 공정성을 기하도록, 의사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대신 가정법원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 ‘사법입원제’이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임세원법)을 이미 지난 1월 발의했다. 윤 의원실은 개정안을 11월 정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안건으로 올려 입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환자단체들은 개정안이 인권침해 요소는 크고 효과는 미미한 ‘반(反)임세원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환자가 긴급하게 강제입원할 경우 그 입원을 연장하는 심사를 가정법원에 맡기는 것이다. 현행법은 경찰(응급입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행정입원)의 요청을 받아 2명 이상의 정신건강전문의 판단으로 환자를 강제입원시킨 경우, 3개월 이내에 의사 등 전문가가 참여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입원을 연장할지 끝낼지 결정해야 한다. 이후 추가로 연장이 필요하면 정신건강심사위원회가 심사를 맡는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심사가 인력과 시간 등 물리적 여건상 서류로만 진행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 해만 7만5,000건에 달한다. 사법입원제에선 가정법원이 환자를 직접 보고, 의사는 물론 환자 입장을 대변하는 절차보조인의 의견도 참고해 입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환자단체도 대면심사가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안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개정안에 사법입원제와 함께 환자 입원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자의입원 중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로 이뤄지는 ‘보호입원’의 경우 직계 혈족이나 배우자 등 좁은 범위의 보호의무자만 신청할 수 있고, 이마저 환자가 자해ㆍ타해 위험이 명백한 경우로 제한된다. 지난 4월 5명을 숨지게 한 ‘진주 참사’의 범인 안인득 역시, 사건 전에 형이 보호입원을 시도했으나 직계 혈족이나 배우자에 해당되지 않아 실패했다.
반면 개정안은 △환자가 입원 필요 여부를 판단하거나 동의할 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박약하고, △입원치료를 하지 않으면 정신질환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배우자나 4촌 이내의 친족, 동거인 등이 신청해도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했다. 보호입원을 신청할 자격이나 요건을 완화해, 치료의 필요성만 있어도 입원시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정신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치료가 인권’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파도손과 카미(약칭) 등 환자단체 측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개정안대로 판사가 환자의 입원을 결정한다면, 그 순간 환자에게 예비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달린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소수의 판사가 여러 법원을 순환하는 한국 사법체계 여건상 사법입원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한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심사를 맡는 전문법원제도가 발달해 있고, 판사가 한 법원에서 20년씩 근무하기도 한다”면서 “판사 수가 부족해서 2, 3년마다 보직을 바꾸는 한국 법원은 사법입원제를 실행할 전문성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일규 의원실은 “법무부가 판사 수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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