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미군 철군 발표 3일 만에… 터키, 쿠르드 자치지역 침공 감행
“동맹 토사구팽” 등 비난 쏟아지자 “8조 달러 날린 중동 개입 최악” 변명
한국 등 방위비 압박 받는 동맹국들“남의 일이 아니다” 우려의 시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군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결국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방아쇠를 당겼다. 비용 문제를 내세워 중동의 끝없는 전쟁에서 빠져나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노선’이 거꾸로 중동을 또 다른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특히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동맹으로 활용했던 쿠르드족을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내팽개친 것이어서, 비용을 우선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동맹마저 배신하는 ‘나 홀로 미국(America Alone)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을 받아온 한국을 비롯한 미국 동맹국들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칫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노선이 북미대화, 나아가 주한미군 주둔에 영향을 주는 상황도 완전히 계산 밖으로 제외시킬 수 없을 것 같다.

터키가 9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대한 군사 공격(작전명 평화의 샘)을 전격 감행하면서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이 발표 3일 만에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이 공격을 승인하지 않았다”며 “이 작전은 나쁜 아이디어라는 것을 터키에 분명히 했다”고 밝혔으나, 시리아 철군으로 터키의 공격을 묵인했다는 반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겉치레성 거리 두기란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나는 이런 끝없고 무분별한, 특히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며 쿠르드 공격의 길을 터준 자신의 결정을 거듭 정당화했다. 그는 또 트위터를 통해 "중동에 개입한 건 우리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다”라면서 중동에서 8조달러(약 9,600조원)라는 비용을 쓴 점을 부각시켰다. 동맹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거듭 드러낸 것이다.

터키의 공격을 받은 쿠르드 민병대는 2015년부터 미군 주도 연합군에 참여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한 일등 공신이었다. 5년간의 전투에서 1만1,000명이 희생 되는 과정 끝에 미군을 도와 IS를 몰아내는 데 성공하며 독립국가 건설의 토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미군이 전격 철군하면서 쿠르드 독립 국가 건설을 반대하는 터키의 공격을 받게 돼 미국으로부터 배신당한 꼴이 됐다. 미국 언론들은 함께 피 흘린 동맹에 등을 돌린 트럼프의 미국과 앞으로 과연 누가 전장에서 함께할지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브래들리 보우먼 선임 국장은 “이번 일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협력하고 싶어할 가능성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군, 시리아 쿠르드 공격 본격화. 그래픽=강준구 기자

AP통신은 이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나 홀로 미국주의’로 칭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고 보도하면서 “북한, 중국,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등과 관련된 미국의 주요한 외교정책 이슈 대부분이 동맹과 친구들을 좌절하게 하고 적과 동지를 헛갈리게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변덕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자국 이기주의와 국제사회의 다자외교를 무시하는 방식,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미국의 외교정책은 물론 세계평화에마저 해를 가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미국이 동맹을 염치 없게 버렸다”며 “IS를 다시 등장시킬 수 있다”고 비판하는 등 친정인 공화당 내부도 부글거리는 모습이다. 미국 언론들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란, IS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라며 중동이 일대 혼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한편 터키 언론들에 따르면 터키군은 이날 네 곳을 통해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진입했으며 이 중 두 곳은 탈 아브야드와 인접한 곳이고 다른 두 곳은 좀 더 동쪽에 있는 라스 알아인 인근이라고 전했다. AP 통신도 익명의 안보 관계자를 인용해 “터키군이 네 갈래로 나뉘어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고 전했다. 터키 국방부는 국경을 넘어간 지상병력의 규모와 공격 지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공습과 곡사포 공격으로 목표물 181개를 타격했다”고 말했다. 터키 국방부는 10일 오전 “유프라테스강 동쪽까지 진군했다”고 밝혔고 터키 아나돌루 통신 역시 터키 공군의 F-16 전투기가 아인 이사 인근 YPG와 PKK의 공군기지와 탄약고를 공습했다고 10일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같은 날 집권 정의개발당(AKP) 연설에서 “이틀째 이어지고 있는 작전으로 테러리스트 10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을 상대로 경고 메시지를 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EU가) 우리의 공격을 침략으로 간주한다면 국경을 열어 360만명에 달하면 난민을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에서는 한국산 K9 자주포의 터키 수출형인 T-155가 사용된 것으로도 보인다. 터키 국방부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T-155 자주포의 포격 사진을 게시하며 ‘평화의 샘 작전 개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AFP 통신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를 인용, 시리아 북동부 하사카주 카미실리시에서 포격으로 적어도 2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자사 기자들이 탈 아브아드에서 폭격을 목격했으며, 어두워진 후에는 붉은 불꽃을 내뿜는 로켓이 국경을 넘어 발사돼 인근 마을을 불태웠다고 전했다. CNN 기자에 따르면 라스 알아인에도 폭격이 발생했다. 그는 “비행기 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고 라스 알아인의 건물들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보도했다.

터키 매체들은 터키 쪽으로 박격포 포탄이 몇 개 떨어졌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전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IS 상대의 전투를 중단하고 시리아 북부에서 총동원령을 내려 터키 상대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의 무스타파 발리 대변인은 트위터에서 “SDF 전사들은 탈 아브야드를 향한 터키군의 지상공격을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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