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민이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 들어 4년 차 예산안을 공개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다짐이 아직도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나라다운 나라를 5년 만에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으로 기대했다. 집권 4년 차의 예산안은 그 진의를 판단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2017년에 작성된 ‘국가재정운영계획’과 지난 9월 작성한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비교해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작성한 국가재정운영계획은 저성장 기조로 인해 나타나는 분배구조의 악화에 대응해 물적 자본 중심의 투자에서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지출 확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재정운영방향을 제시했다.
반면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보면 분배와 양극화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되고,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출범 당시,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양극화를 개선해 지속성장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정운영 기조가 재정투입을 통해 수출ᆞ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수출ᆞ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국민 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시키는 과제가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을 반드시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9~2023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은 집권 초의 국정운영 기조와 달리 물적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운영 기조를 전환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국정운영 기조의 전환은 2020년도 예산 항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대비 2020년 예산 증가율은 9.3%로 2019년의 9.5%보다는 0.2%포인트 낮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율이라 할 수 있다. 미중 무역 분쟁과 미국 국채의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등 경기 침체의 전조로 읽힐 수 있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계경제의 둔화와 일본의 보복 조치가 경제 관련 예산을 증가시킨 기폭제가 된 것을 감안해도 2020년 예산안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인 항목이 대부분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항목들이라는 것은 이례적이다. 산업ᆞ중소기업ᆞ에너지 부문 예산이 2019년과 비교해 무려 27.1%나 증가했고, R&D 예산도 17.6%나 증가했다.
극적인 변화는 SOC 예산에서 나타났다. 2017년에 편성한 2018년 예산을 보면 SOC 관련 예산은 14.0%나 감소해,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사람 중심 경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집권 4년 차 예산을 보면 집권 초의 기조가 약화되면서 SOC 예산이 무려 12.6%나 증가했다. SOC 예산 증가율이 2018년 –14.0%에서 2020년 +12.6%로 극적 전환된 것이다.
국정운영 기조가 복지국가의 확대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내수를 활성화시켜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겠다는 것에서 지난 보수정부, 더 멀리는 과거 개발국가의 성장제일주의로 되돌아갔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사회가 확인한 것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 중심의 조립형 성장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성장제일주의를 내걸고 집권했던 보수정부의 9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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