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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속내는 “우리만 비핵화 의무 있나, 미국도 안전보장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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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속내는 “우리만 비핵화 의무 있나, 미국도 안전보장 의무”

입력
2019.10.10 04:40
수정
2019.10.11 14:0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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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의무 다하면 美가 보상’ 기존 협상 틀에 불만… 비핵화-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가 교환 원하는 듯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대미 실무협상을 벌인 뒤 결렬을 선언하며 성명문을 읽고 있는 김명길(오른쪽)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스톡홀름=박지연 기자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대미 실무협상을 벌인 뒤 결렬을 선언하며 성명문을 읽고 있는 김명길(오른쪽)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스톡홀름=박지연 기자

비핵화 협상 상대인 미국에게 북한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의무가 부과되는 기존 협상 틀을 양쪽에 공정해지도록 새로 짜되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 중단) 등에 걸맞은 행동을 미국도 이행해야 비로소 본격 비핵화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북한 입장의 핵심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8일 “미국은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핵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제거함이 없이 그 결과인 조선(북한)의 핵 전쟁 억제력만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폐기해야 그 무슨 보상을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미 협상을 북한의 ‘의무’와 이에 대한 ‘보상’으로 보는 미국 측 프레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9일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이라는 현재 협상 프레임을 흔들어 가령 ‘포괄적 비핵화 대 포괄적 안전 보장’ 식으로 의무만 교환되는 공정한 새 규칙을 만들자는 게 북이 원하는 ‘새로운 계산법’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신들의 비핵화 의무를 구체화하려면 미국의 상응 조치 의무 역시 등가(等價)적이고 명확해져야 한다는 게 북한 논리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 ‘플러스 알파’(+α) 같은 초기 비핵화 조치와 비핵화 정의(최종 상태), 비핵화 로드맵 등 3대 요구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견인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초기 상응 조치와 상응 조치 완성의 최종 단계, 단계적 상응 조치 이행 로드맵 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렬로 끝난 스톡홀름 협상에서 나온 북한의 요구는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로 요약된다. △군사적으로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의 중단과 미 전략 자산(무기)의 한반도 반입ㆍ전개 중지 △정치ㆍ외교적으로는 적성국 해제와 평화 협정 체결, 북미 수교 △경제적으로는 대북 제재 해제 등이 적대 정책 철회에 해당하는 조치들이고, 이런 것들이 비핵화처럼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게’ 이뤄지도록 미국과 합의하는 게 북한의 목표다.

북미 협상 ‘출발선’에 대한 환기도 스톡홀름 협상 전후 북한이 한 일이다. 북한은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일관되게 북미 협상 프로세스를 ‘신뢰 조성’ 단계와 ‘비핵화’ 단계로 구분해왔는데, 신뢰 조성 단계는 북미가 약속한 선의의 조치들을 이행하는 단계다. 자기들은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엄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미군 유해 송환 등 약속을 이행한 반면 아직 미국은 싱가포르 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조속한 종전(終戰) 선언 체결 △관계 개선 진전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 등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게 북한의 불만이다.

북한이 포기하지 못하는 협상 방식은 정상끼리의 ‘톱다운’(하향식) 거래다. 구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미 외교 관료들을 비난하며 실무협상의 무용성을 거듭 강변 중이다. 결국 파격을 즐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야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북한도 대담해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다시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자기 지위만 유지되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데다 군부 눈치도 봐야 하는 외무성 관료 대신 과거 군부 개혁을 주도한 경험이 있는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일 3국 북핵 협상 수석대표가 8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회동했다. 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사흘 만이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8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북미 실무협상 등 최근 북한 관련 동향 및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 “이 본부장이 비건 대표,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한미일 및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3국 간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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