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다산 독본’ 연재 마친 정민 한양대 교수 
‘다산독본’ 연재를 마무리한 정민 한양대 교수가 지난 2일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교수는 영웅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우리 학계의 평전 문화를 질타하며, “세상의 진실은 극단이 아닌 중간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범접할 수 없는 ‘다산(茶山)’ 정약용 연구 권위자다. 10년 넘게 펴낸 다산 관련 책만 총 10권. 지난해 3월부터 1년 반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다산 독본(82회)’에서는 유학의 틀로만 바라봤던 다산을 천주교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 교수는 아직도 다산을 다 알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 2일 연구실을 찾았을 때도 여전히 다산 자료에 파묻혀 있었다. 정 교수는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각지대가 계속 나오더라”며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재는 다산의 전 생애를 본격 해부한 시도였다.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하기 바쁘고, 나쁜 면은 덮어놓고 숨기려 드는 우리 나라의 평전 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싶어 시작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반면 이순신의 경쟁자였던 원균은 역적으로만 몰린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두 사람 모두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나라에서 치하를 받았다. 원균을 100%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도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권리이기에,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다산 역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새로 발견한 다산의 ‘흠’이 있다면. 

“지금까지 다산 학당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존경하는 ‘드림팀’으로 평가 됐다. 그러나 실제 다산은 유배 이후 강진에서 키운 제자들과 척을 진다. 스승을 극진히 모신 제자들 입장에선 한 자리를 챙겨줄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다산은 모른 척 했다. 원칙을 앞세운 다산을 탓할 건 아니지만, 제자들과 끝까지 사이가 좋았다는 건 팩트가 아니다. 다산은 부부금슬도 좋지 않았다. 아내의 치마폭에 글씨를 썼다는 ‘하피첩’을 두고 애틋한 사랑이라고 해석하는데, 아내에 대해 ‘도량이 좁은 게 문제’라고 흉 보는 글도 나온다. 다산에겐 소실이 낳은 딸도 있었는데 부인이 쫓아내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최근 발견된 다산의 친필 편지를 보면 강진에서 낳은 딸을 서울로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이 구구절절 적혀 있다. 그런데도 다산 연구학자들은 다산의 이런 면모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정민 교수는 ‘다산독본’ 연재는 마무리했지만, 다산의 중년과 노년 등 나머지 생애 연구는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다산이 쓴 친필 편지를 정리해놓은 자료집을 보여줬다. 배우한 기자
 -청년 다산의 삶에서 천주교를 새롭게 조명했다. 

“다산과 천주교의 관계를 얘기하면, 국학계에선 ‘너 천주교 신자냐, 그래서 다산을 천주교 신자로 몰고 싶어 하는 거냐’는 공격이 들어온다. 반면 천주교에선 만천유고(蔓川遺稿ㆍ한국 천주교의 창설자 이승훈이 남긴 사료)가 가짜라고 밝혔더니 난리가 났다. 천주교 입장에선 치명타였다. 불편하겠지만 진실을 이야기한 건데, 양쪽 공히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문제다. 연재에 담지 못한 중년, 노년 생애에선 불교와의 관계를 다뤄볼 생각이다. 다산은 천주교뿐 아니라 불교활동도 활발히 했다. 다산 문집에는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이다. 문집은 다산 스스로 검열을 해서 ‘오염된 사료’다. 드러나지 않은 사료를 들여다보지 않고 다산을 말하는 건 다산을 반 토막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 교수가 지적한 외눈박이식 평전 문화의 한계는 작금의 한국 사회와도 겹쳐진다. 정 교수는 “요새 나라가 ‘조국이냐, 아니냐’로 두 동강이 나지 않았냐.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로, 각자의 정체를 밝히라고 종용 하는데 한 사람에 대해 ‘10대 0’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라며, 연암 박지원이 건넨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백호 임제가 술이 취해 걸어 나오는 데 한 발은 가죽신, 한 발은 나막신으로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거예요. 하인이 깜짝 놀라자 임제는 ‘어차피 말에 타면 이쪽에선 나막신 신었네 할 테고, 저쪽에선 가죽신 신었네 할 텐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죠. 조국 사태로 갈라진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은 짝짝이 신발을 신을 일이 없다고 전제하고 한쪽에선 가죽신을 신었네, 한쪽에선 나막신을 신었네 하며 서로 목숨을 걸고 있죠. 그러나 한쪽에서 본 건 전부도 아니고, 전부일 수도 없어요. 박지원은 ‘말의 정면에 와서 보라. 그러면 짝짝이 신발이 보일 거다’라고 일갈하죠. 시비재중(是非在中), 즉 옳고 그름은 중간에서 보인다는 얘기에요. 극단으로 치달으면 폭력만 남고 진실은 묻히게 되죠. 사라진 중간을 찾아주는 지혜의 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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