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13건이 3개 시기에 몰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시차를 두고 집중 발생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 지역이 가축질병 바이러스로 오염됐다면 시간상 무차별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돼지열병의 경우 ‘발병기’와 ‘휴지기’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 때문에 전파 경로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한편, 발생 농장들이 방역당국에 신고를 제때 못하다가 한꺼번에 하는 통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13건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우선 지난달 16일과 17일 경기 파주시와 연천군 양돈농장에서 처음 발병했고, 6일 뒤인 23일부터 26일까지 △경기 김포시 △파주시 △인천 강화군 농장 총 7곳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다시 잠잠하더니 5일 뒤인 이달 1일부터 이틀 간 경기 김포시와 파주시 농장 4곳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증상 발현이 아니라, 방역당국이 발병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시간차가 나타났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발생 농장에서 신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한 지역이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무작위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라며 “정부가 농장을 대상으로 일제 소독이나 검사를 하는 시점에 추가 발병 사실이 한꺼번에 드러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추가 발병이 속출한 지난달 23일과 이달 1일은 정부가 ‘전국 일제소독’ 등 집중 방역 계획을 밝힌 시점이다.
특히 지난달 24~26일 농장 5곳에서 무더기 확진 판정이 나온 인천 강화군은 신고가 늦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강화군 내 확진 판정을 받은 일부 소규모 농장의 경우 최초 파주시 농장보다 증상이 훨씬 심각했다”며 “경기 북부가 아닌 강화군이 1차 전염 지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강화군의 한 발생 농장 주인은 방역당국에 “돼지들이 보이는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지 돼지열병인 줄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화군에서 가장 먼저 확진 판정을 받은 송해면 양돈농장은 농장주의 자진신고가 아니라 방역당국의 예찰검사 과정에서 의심 증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정부가 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보다 더 강도 높은 방역을 추진하는 것 역시 혹시라도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은 강화군에 있는 돼지 3만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한 것은 물론, 경기 연천군 발생 농장 반경 10㎞ 내와 파주시ㆍ김포시에 있는 전체 농장을 대상으로 이날까지 수매 신청을 받았다. 수매 신청을 하지 않거나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돼지는 모두 살처분된다. 해당 지역에 있는 돼지는 모두 11만마리에 이른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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