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즉각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라!”
세계 주요 도시의 도로가 봉쇄되고, 정부 청사 앞에는 농성 텐트가 들어섰으며, 미 뉴욕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은 ‘붉은 피(염료)’를 뒤집어썼다. 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에서 도로 점거 시위에 나선 글로벌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ㆍXR)의 활동가들은 정부를 향해 기후변화에 대한 즉각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하루 동안만 전 세계에서 수백명이 체포됐다.
AP통신과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멸종저항’의 본거지인 런던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오전부터 거리로 나와 웨스트민스터 다리, 트래펄가 광장, 정부 청사 등에서 점거 시위를 벌였다. 런던 경찰은 이날 280여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시위는 영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브라질 등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미 언론들은 뉴욕 시위대가 월가의 상징인 황소 동상에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염료를 뿌리고, 자신들에게도 이를 묻혀 동상 주변에 드러눕는 ‘죽음 퍼포먼스’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시위를 주최한 저스틴 베커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화석연료 산업과 월가의 금전적 이익을 연결 지으면서 “수많은 피가 이곳(월가)의 권력자들, 우리가 살아가는 유해한 시스템으로부터 뿌려졌다”고 비판했다.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도 각각 1,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공원과 광장, 쇼핑센터 등 시내 명소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시위대가 국립미술관 인근 도로를 봉쇄했다가, 100명 이상이 당국에 체포됐다. 캐나다의 밴쿠버ㆍ토론토, 호주 시드니ㆍ멜버른ㆍ브리즈번 등에서도 시위가 벌어졌고, 인도 뭄바이에서는 활동가 250명이 뉴욕과 동일한 ‘죽음 퍼포먼스’를 벌였다. 일부 도시에서는 시위대가 차량이나 고가도로에 몸을 묶거나, 농성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국에서 창설된 단체 ‘멸종저항’은 각국 정부에 ‘기후ㆍ생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과감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상징은 원 안의 ‘모래시계’로 “다양한 생물종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짧게는 수일, 길게는 2주 동안 세계 60여개 도시에서 이 같은 시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날 시위에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경찰에 “사법권을 최대한 활용해” 시위를 막으라고 지시했으며, 피터 더튼 호주 내무부 장관도 지난주 언론에 시위대의 이름과 사진을 널리 퍼뜨려서 “망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헬게 브라운 독일 연방총리실장도 공영 ZDF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기후보호에 관심이 있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이 그 기준”이라면서 “당신이 이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으나, 만약 (도로 점거와 같은) 위험한 개입을 선언한다면 이는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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