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진 대표 “멋지게 망하는 사회적 기업 되고 싶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폐지수거노인들로부터 폐박스를 시세보다 6배 비싼 가격으로 사들인다. 폐박스는 ‘업사이클링’을 거쳐 예술작품 제작을 위한 캔버스로 다시 태어난다. 러블리페이퍼 제공

폐지 수거 노인들은 보통 하루 8시간씩 폐지를 줍는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일하면 대략 100㎏ 정도를 주울 수 있다. 이 폐지를 고물상에 가져가면 ㎏당 50원을 쳐주는 시세에 따라 5,000원 정도를 손에 쥐게 된다. 일당 2,500원인 셈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이렇게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은 175만명에 달한다.

기우진(38)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이런 어르신들로부터 폐지를 시세보다 6배 비싼 ㎏당 300원에구입하고 있다. 적은 돈이기는 하나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러블리페이퍼는 이렇게 구매한 폐지를 다시 활용해 예술작품 제작을 위한 캔버스로 재탄생시키는 사회적 기업이다.

2013년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기 대표는 학교 주변에서 힘들게 폐지를 주워가는 노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폐지 1㎏당 수십원이 말이 되나? 이것보단 폐지를 비싸게 사줄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벌이로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폐지 수거 노인의 현실이 사회 문제라고 판단한 기 대표는 ‘폐지를 비싸게 사들일 수 있는 회사’를 직접 차리기로 결심했다. 러블리페이퍼는 2016년 ‘폐지수집 어르신들의 삶을 바꿔 보겠다’는 기 대표의 열정에서 출발했다.

러블리페이퍼 사무실 1층 작업실의 한 쪽 벽면은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폐박스로 만든 캔버스 위에 재능기부 작가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진다. 김민준 인턴기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폐지를 매입하기 위해 기 대표가 밤낮으로 고민한 결론은 ‘업사이클링(Upcycling)’이었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을 뜻한다.

어르신들이 정해진 날짜에 폐지를 주워오면 러블리페이퍼 직원들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재활용에 적합한 폐지들을 선별해 매입한다. 오물이 묻었거나 물에 젖은 폐지는 캔버스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입한 폐지는 직원들의 작업을 거쳐 예술 작품 제작을 위한 캔버스로 다시 태어난다. 일정한 크기로 자른 폐박스를 겹겹이 쌓고 천을 씌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를 만드는 식이다.

캔버스가 완성되면 이제 재능기부 작가 300여명이 솜씨를 발휘할 차례다. 작가 한 명당 연간 16개 정도의 예술 작품을 그려낸다. 풍경화, 명화, 캘리그라피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기 대표는 "작품 퀄리티 확보에도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며 "최대한 다양성 있는 작품들을 확보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그림을 그려줄 디자이너를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먼저 문의 전화가 들어오기도 할 정도다.

완성된 작품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로를 통해 시중에 판매된다. 소비자들은 네이버 스토어를 이용하거나 인천과 세종에 위치한 팝업스토어를 직접 방문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러블리페이퍼 만의 ‘정기구독제도’도 중요한 수입원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정기구독제도로 10월 현재 280명의 정기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구독자들은 월 1만원 정도의 금액을 주기적으로 내고 매달 4개의 작품을 골라갈 수 있다. 판매 수익은 다시 폐지 구매를 위한 보조금이나 어르신들의 여가활동, 안전물품 구입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러블리페이퍼는 지방자치단체 연계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인천시는 지난 6월부터 노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인천형 노인적합일자리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6월부터 11월까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러블리페이퍼는 인천시 지원으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매개로 한 대기업과의 민간교류도 활발하다. 지난 4월부터 SK SE연계프로그램 파트너사로 선정된 러블리페이퍼는 자체 제작한 캔버스 이외에도 SK로부터 캔버스를 기증받고 있다. 러블리페이퍼가 교육용 키트를 기업 측에 제공하면, 기업 임직원들이 이를 캔버스로 만들어 기증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제공받은 캔버스 뒷면엔 폐지를 제공한 어르신, 캔버스를 만든 임직원, 그리고 디자이너의 이름이 새겨진다. 기 대표는 “예술 작품들은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스토리를 간직한다”고 설명했다.

러블리페이퍼 작업실에서 담소를 나누며 함께 근무하는 어르신들. 김민준 인턴기자

러블리페이퍼는 올해 7월부터 총 10명의 폐지 수거 노인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안전하고 외롭지 않은 작업 환경을 조성해드리기 위해 사무실 주변 어르신들을 한 분씩 모신 게 벌써 열 분이나 됐다. 정기구독자와의 오프라인 모임을 위한 약속도 잡고 있다. ‘1인화한 노동’ 탓에 외로움을 타는 보통의 폐지 수거 노인들과는 달리, 러블리페이퍼의 어르신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르신들에겐 경제적 배고픔뿐 아니라 정서적 외로움도 큰 문제”라고 설명한 기 대표는 “이곳의 어르신들은 함께 작업하며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존재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러블리페이퍼의 궁극적 목표는 '멋지게 망하는 것'이다. 노인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 이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기업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는 뜻에서다. '재활용품수거노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해 직접 공청회를 주관하기도 한 기 대표는 "러블리페이퍼가 일시적인 이벤트나 보기 좋은 모범 사례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사회 변화로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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