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B형 혈액형 체모 발견돼… 인근 지역 남성 800명 불러 대조 
 李, O형 혈액형에 체모 형태 달라… 경찰, 동위원소 분석 대상서 제외 
 대법 확정 뒤 관련증거 모두 폐기… 사건은 미궁 속으로 
 이춘재 ‘생애 전 과정 면담’ 시작… 20년 옥살이한 윤씨 “재심 준비” 
[저작권 한국일보]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 고교졸업 사진(오른쪽)과 몽타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춘재(56) 자백이 오히려 화성 8차 사건을 미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사건 당시 범인으로 지목돼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윤모(52)씨는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나섰으나, 대법원 확정판결 뒤 관련 증거가 모두 폐기돼 사건 당시 주요 증거로 꼽혔던 체모를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은 8일 이춘재에 대한 ‘생애 전 과정 면담’에 돌입했다. 마땅한 물증 없이 진술만 남은 사건이라 범행 동기 등 사건 전반을 되짚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988년 9월16일 박모(당시 14세)양이 성폭행 뒤 살해당한 8차 사건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체모 여섯 가닥을 입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으나 유전자 감식 기법이 없었던 당시로는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해보니 체모에서 중금속(티타늄 등) 성분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높다’는 특징과 ‘혈액형은 B형’이란 결과를 통보받았다.

경찰은 인근 지역 남성 800여명을 불러 모아다 체모 조사를 했다. 이춘재 또한 조사 대상이었다. 이춘재가 박양의 집에서 불과 두 집 건너에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춘재는 곧 배제됐다. 이춘재의 혈액형이 O형이었고, 이춘재의 체모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의 형태가 달랐다. 그 때문에 이춘재의 체모는 국과수에 보내는 동위 원소 검사 대상에서도 아예 빠졌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동위원소 분석 비용이 비싸서 모든 사람들의 체모를 조사하진 못했고, 이춘재의 체모도 그렇게 대상에서 빠진 것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 당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찾을 방법은 묘연하다. 경찰은 8차 사건을 윤씨의 모방범죄로 결론지었고 대법원은 1990년 5월 8일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증거물들은 최종 확정판결 이후 최장 20년이 지나면 단계적으로 폐기된다. 8차 사건 당시 경찰이 수집해둔 증거물들은 2011~2013년 사이에 이미 폐기됐다. 지금 유전자 감식 기법을 쓰려 해도 비교해볼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이춘재가 8차 사건을 자백했을 때는 우리도 당혹스러웠다”며 “8차 사건은 물론, 다른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자백을 받기 위해 생애 전 과정부터 면담을 새로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씨는 이날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씨는 “30년 전 억울하다고 했을 때 언론은 뭐했느냐”며 “지금 성질이 안 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체모에 중금속이 많다’는 감식결과에 맞춰 직업이 용접공이란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됐다. 항소심 재판 때부터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진술을 뒤집었으나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교도관이나 동료 수감자들은 윤씨를 ‘착실한 사람’ ‘가끔 억울하다고 말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윤씨는 20년 복역 뒤 200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수원=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수원=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청주=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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