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회복세에 사고도 늘어… 원청 눈치에 사망사고 아니면 신고 안해 
 조선업재해조사委 외주화 자제 권고했지만, 당국 1년 넘게 허송세월 
조선소에서 작업중인 노동자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부에서 일하는 16년차 하청 노동자 한찬희(가명ㆍ49)씨는 최근 들어 부쩍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회사 LPG 저장탱크 제작장에서 일하던 박모(61)씨가 탱크 절단 작업을 하다가 절단된 철판에 끼어 숨진 사고 소식을 듣고 나서다. 절단된 부분이 떨어지지 않도록 크레인으로 고정해 놓는 기본적인 안전 장치도 없이 작업을 하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비용이 든다는 핑계로,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고 작업을 하는 건 비일비재하다고 한씨는 전했다.

당시 사고 현장은 한 시간 넘게 방치돼 동료들은 참혹한 광경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성실하게 일하던 박씨의 죽음은 다른 동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한씨는 “밥도 잘 안 넘어간다는 동료들도 많은데 사고 장소만 ‘작업 중지’ 상황이라 매일 사고 현장 주변에서 일을 계속 하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거제에도 사고가 난 애기를 들었냐”고 되물은 뒤 “사고 소식을 접할 때면 정말 나쁜 생각이지만 ‘나는 무사히 넘겼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 사고가 난 직후인 같은 달 26일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지모(35)씨가 신호수 업무를 하다가 선박 제조에 쓰는 10톤짜리 블록에 깔려 숨진 사고를 언급한 것이다.

올해 5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고사망자(8명)는 모두 박씨, 지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다. 조선업은 건설업과 함께 높은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당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을 기록하고 있는 업종이다. 조선업은 사내하청 비율이 높은 대표적 산업(70.6%ㆍ2015년)이긴 하지만 사고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율이 전 산업 평균의 2배에 달하는 건 예사 일이 아니다.

2017년 모두 10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STX조선해양 폭발사고가 계기로 당국도 관심을 기울이는듯 했다.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민간전문가와 노사관계자 등이 참여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조선업 산재를 줄이기 위한 사고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비용절감만 지향하는 외주화 자제 △중대재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다단계 하도급을 엄격히 제한 등 사고예방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금까지 변한 것은 별로 없다고 호소한다. 당시 조사위에 참여했던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부장은 “조사위 권고 사항을 정부가 받아들인 게 아무 것도 없다”며 “권고 사항 이행을 위한 후속 위원회 운영 제안도 나왔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국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박씨와 지씨 같은 하청 노동자들이 또 희생됐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 없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 1위’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업종별 사고 사망만인율. 그래픽=신동준 기자
 
 ◇ 최근 5년간 조선업 사고사망자 10명 중 8명은 하청 노동자 

조선업 자체의 산재위험도는 여전히 높다. 경기 침체기에는 사고 사망자수와 사고사망만인율이 조금씩 줄었지만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서는 높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동안의 사고사망자를 합산한 사고사망만인율을 계산해보면 조선업은 1.68‱로, 전체 산업(0.71‱)은 물론 건설업(1.58‱)보다도 높다. 더 큰 문제는 사망사고는 중대 재해는 하청노동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8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넘겨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조선업 사고사망자 10명 중 8명(83.3%)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이 비율은 70~80%대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7년 80.0%(16명), 2018년 75.0%(3명) 등이다. 이는 전체 산업에서 산재사고 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율(2017년 40.2%, 2018년 38.8%)의 2배 가까운 수치다.

현장에서는 조선업 산재 위험성이 수치로 나타난 것보다도 심각하다고 호소한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사망사고에 앞서 수많은 비슷한 사고가 있는데 이는 신고조차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성호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사고가 나면 119구급대를 불러야 하는 게 맞는데 짐을 나르는 소형 트럭에 태우고 인근 병원을 찾아 다닌다”며 “올해 7월에도 작업 중 다리가 찢어진 노동자가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원청 눈치를 보며 산재로 접수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고, 고용이 불안한 하청 노동자는 산재신청을 꺼려하는 회사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조선업 사고사망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 반복되는 안전 사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 없이 해결 어렵다” 

반복되는 안전 사고는 결국 ‘비용’ 때문이다. 비용절감을 위한 원ㆍ하청 구조 아래에선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위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경남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유최안(38)씨는 “최근 380㎏이 넘는 블록 밑에 깔린 노동자가 있었는데, 원래 2인1조로 할 작업을 혼자 하면서 사고가 커졌다”며 “원청이 인건비 절감에 집중하다 보니 하청에 충분한 대금을 주지 않고 결국 인력 부족으로 기본적인 2인1조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에게는 안전 장비를 설치하는 비용도 부담이다. 큰 배를 만드는 조선업 특성상 높은 작업 현장이 많아 안전한 발판 구조물들이 필요한데 하청업체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설치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유씨는 말했다. 그렇다고 원청이 이를 지원해줄리는 만무하다.

조선업은 오랜 침체를 겪고 완연한 회복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9년 8월 조선업 수주 실적 및 고용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3만5,000CGT(73.5%) 수주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선박 건조량이 늘어나면서 조선산업 고용도 지난해 8월의 최저치(10만5,000명)에서 벗어나 지난달 11만명대를 회복했다. 경기 회복은 반가운 일이지만 현장에서는 시름이 깊다. 일하는 사람이 늘고, 물량이 몰리면서 사고 확률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선제 대응을 하겠다며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주요 조선업 8개사와 함께 ‘안전보건 리더회의’를 열기도 했지만 이미 올해 사고사망자 수는 지난해(4명)를 넘어섰다. 조선업중대재해조사위에 참여했던 문창수 한국노총 부산본부 조직본부장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와 경쟁을 하다 보니 납품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결국 원청은 지금도 안전을 비용으로 계산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하청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인력을 공급하는 수준의 사내하청을 줄이거나 안전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인사ㆍ노무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도급(하청)을 제한해야 하는 위험업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원청의 하청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 강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조선업중대재해조사위 역시 이 같은 부분을 최종보고서에서 권고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선업은 다양한 법인과 개인이 연결돼 일하는 하나의 ‘네트워크 구조’를 이루고 있다”며 “해당 네트워크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하는 원청 법인의 대표이사 등에게 전체 산업안전보건 예방과 사후처리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 제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이용득 의원은 “물량팀(특정 작업물량을 처리하는 기간에 단기 고용하는 조직)을 비롯한 조선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력하게 묻는 동시에 복잡한 하청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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