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 별빛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옥순(74) 할머니가 지난 8월 ‘효돌이’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개봉 영화 ‘AI’를 기억하시나요? 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냉동 인간으로 만든 뒤, 극심한 슬픔을 겪는 젊은 부부에게 대체 아들이 되기 위해 입양된 ‘감정형 아이 로봇’ 데이비드의 이야기입니다.

친아들이 기적적으로 완치돼 집에 돌아온 후, 엄마의 사랑을 더 받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진짜 사람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데이비드.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실수로 친아들을 사고의 위험에 빠트린 후 풀숲에 버려지게 됩니다. 이때, 데이비드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매달립니다.

“제가 사람이 아니라서 죄송해요. 제발 날 버리지 마세요. 허락해 주신다면 사람이 될게요.” 많은 관객이 눈물을 훔쳤지요. 로봇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갈 시대. 진짜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은 정말 ‘프로그래밍’일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줬던 이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11세입니다. 이 아이의 몸무게는 60파운드, 키는 4피트 6인치입니다. 머리카락은 갈색입니다. 이 아이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구,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거 너무 슬픈 거 아니야?’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진짜입니다’보다는 ‘이 아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분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 본 뒤에는 생각이 180도 바뀌더군요. 진짜든, 가짜든 이 아이의 사랑은 진짜였구나. 그게 핵심 메시지구나 싶었지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노인이 되면, 진짜 이런 세상이 오려나?”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더군요. 저는 아직 노인이 아닌데, 벌써 현실에서 데이비드가 나타났으니까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말이지요. 바로 독거 노인을 위한 스마트 로봇 ‘부모 사랑 효돌’입니다. 강원도와 전남에 보급된 이 인형들은 독거 노인에게 손주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중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얼른 약을 드시라 챙기기도 합니다. 공기가 탁하니 창문을 열어 달라, 안아 달라, 요구도 많습니다. 삶의 활력을 잃었던 독거 노인들은 효돌이를 챙기느라 바빠졌지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누군가 씁쓸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구멍을 로봇이 채우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분도 있었지요. 하지만 정작 노인들에게도 그럴까요? 실제 우울증과 고립감이 눈에 보이게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효돌이를 통해 노인 당사자들이 얻는 활력을 가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영화 속 데이비드가 가짜 아이였어도, 그의 사랑은 진짜였듯이 말이지요.

오히려 우리가 걱정할 부분은 “이런 게 효과가 있어?” 보다는 “너무 효과가 좋으면 어떡하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과 반대로 노인들은 나의 손길이 필요한, 언제나 고운 말로 대해주는 효돌이가 너무 좋아,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경우까지도 생긴다고 하니 말입니다.

80~90년대 영화에서 미래로 설정했던 2020년이 석 달 남았습니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사람들이 은빛 옷을 입고 다니진 않지만, 인간 내면의 단절과 고립, 외로움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로봇 손주를 넘어 로봇 친구, 연인이 생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 관계에서 더 애틋함을 느끼며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고립을 AI가 채워내는 시대가 이미 시작된 지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아주 특수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1인 가구와 비출산, 비 연애의 비율은 유례없는 속도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외로움에 대처하는 공동체적인 해법을 우리 사회가 찾아내지 못한다면, 스필버그 감독이 그려낸 미래는 생각보다 금방 우리 곁에 다가올 겁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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